감숙성 장액시 숙남 위그족 자치현의 산바람에는 늘 고유하고 맑은 기운이 흐른다. 설산과 초원, 협곡과 강이 어우러진 이곳의 인구는 만여 명에 불과하지만 독특한 언어와 의상, 노래와 춤, 풍습을 지닌 위그족이 살고 있다.
숙남현 민족박물관에서 위그족의 래력은 유물 하나하나를 통해 펼쳐진다. 해설사 곽천의 소개에 따르면 위그족은 주로 숙남에 살고있는데 일부는 감숙성 주천시 황니보향 일대에 살고있으며 사용하는 언어는 각각 알타이어계 몽골어족과 돌궐어족에 속한다. 이러한 언어적 차이는 긴 이주와 다원적 융합의 력사를 기록한다. 위그족 민요 <서지하지(西至哈至)>에는 “머나먼 동방에서 소와 양을 타고 락타를 몰고 한길로 이주해 왔다”는 흐릿하지만 깊은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다. 위그족 청년인 곽천이 숙남에 남기로 한 리유를 묻자 그녀의 대답은 소박했다. “내 고향이 여기니까요.”

숙남현민족박물관에서 해설원 곽천이 위그족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고향이 여기 있다’는 한마디는 먼 이주사를 현재로 끌어온다. 숙남은 전국에서 유일하고 감숙성에만 있는 위그족 자치현이다. 2024년 숙남현 민족박물관은 국가 2급 박물관으로 새로 지정되여 위그족의 력사문화를 체계적으로 전시하게 되였다. 또 다른 한곳에서는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위그족 복식 전승인 가최령이 직접 세운 위그족 민속박물관과 특색 마을이 민간의 힘으로 목축구역과 마을들의 흩어진 생활 기억을 수집하고 있다.
올해 64세인 가최령의 위그족 이름은 사이르징이다. 14살때부터 옛 물건을 수집하고 민속과 수공예를 배운 그녀는 수십 년간 목축구역을 찾아다니고 로인들을 만나면서 한때 남들이 ‘페품’이라 여겼던 옷쪼각과 가죽 제품, 마구, 유목 도구 등을 모았다. “이것들을 남기지 않으면 후세들은 조상이 어디서 왔는지, 과거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알지 못하게 됩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가최령에게 옛 물건은 단순한 전시품이 아니라 위그족 생활의 증거이다. “위그족은 유목민이자 ‘말 잔등 우의 민족’입니다. 과거 목축민의 이주와 일상 생산에는 말이 없어서는 안 되였습니다. 부족마다 수공 모직물 문양이 달라 익숙한 사람은 멀리서 봐도 어느 부족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위그족 복식 전승인 가최령이 위그족 민속박물관에서 소장품을 소개하고있다
전시장에는 과거 위그족 소년들이 몸에 지니던 ‘세 가지 보물’, 즉 나무 그릇과 칼, 부시돌이 특히 눈길을 끈다. 가최령은 소년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이것들을 가지고 칠련산에서 기본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생활 지혜는 위그족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에서도 드러난다. 그녀에 소개에 따르면 과거 유목은 마음대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계절과 수초, 가축 성장에 따라 이동하는 것이였다. “로인들은 무지개가 있는 곳으로 가서 방목하라고 말했습니다. 매우 랑만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적으로 보면 무지개가 있다는 것은 그곳에 비가 내렸고 수원이 있으며 물과 풀이 더욱 풍족하고 무성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무지개는 위그족의 옷단과 머리 장식, 복식 문양에 수놓아졌습니다. 길상의 의미이면서 위그족이 하늘과 땅을 관찰하고 초원을 찾는 생활 지혜이기도 합니다.”
박물관 밖에서 가최령은 위그족 특색 마을 조성도 주도했다. 2.8만 평방메터 규모의 마을에는 위그족 옛 양식을 복원한 전통 천막이 특히 눈에 띈다. 천막 안은 옛 유목 시설과 전통 음식 풍습을 복원했는데 위그족의 전통 의례와 학습 체험, 문화관광 활동이 열리는 중요한 장소가 되였다. 최근 몇 년간 그녀는 무형문화유산 기능 훈련반을 열고 바늘과 실, 가죽쪼각 재료를 가지고 학교들에 찾아가 학생들에게 위그족 문양을 알려주고 전통 수공예를 배우게 했다.
오늘날 위그족 민요와 위그족 복식, 위그족 전통 혼례 풍습은 모두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보호 목록에 등재되였다. <서지하지>의 이주 메아리부터 오늘날 칠련산 자락의 안정된 생활까지, 위그족의 래력은 세월에 묻히지 않았고 거듭된 이야기와 수호 속에서 현대 생활 속에 계속 이어지고 있다.
/중국신문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