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중요성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러나 그 실천에 있어 속독과 정독 사이의 균형은 많은 이들을 고민하게 하는 지점이다. 책을 많이 읽으려면 빨리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량보다 질’을 내세우며 정독을 우선시 한다
속독을 권장하는 이는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짧고 책은 끝없으니 한눈에 열줄을 읽지 않고서는 널리 볼 수 없다. 정독을 주장하는 이는 또 이렇게 말한다. 독서는 정수를 얻는 데 있으니 너무 많이 탐하다가는 결국 피상에 그칠 뿐이이다.
두 주장 모두 그 바탕에는 책 읽기에 대한 진심이 깔려있기에 어느 한쪽이 옳고 그르다고 이분법적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이 두가지의 차이가 방법의 우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읽는 목적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속독은 넓은 시야를 제공한다. 마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 책 전체의 흐름과 골격을 한눈에 꿰뚫게 한다. 방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필요한 지식을 빠르게 걸러내고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하게 돕는 것은 분명 속독의 장점이다. 전체적인 인상과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는 이보다 빠른 길이 없다. 특히 실용서나 정보가 중심이 되는 책들은 과감하게 훑어보며 핵심만 챙기는 전략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 빠름은 때로 얕음을 동반한다. 깊은 사유가 필요한 철학적 통찰이나 문학적 미학은 속독의 그물을 쉽게 빠져나간다.
정독은 그 반대이다. 한 문장, 한 단어에 머무르며 저자의 사유를 따라가는 집중의 시간이다. 정독을 통해 우리는 저자의 내면에 진정으로 닿을 수 있다. 고전은 대부분 정독을 요구한다. 고전을 읽음에 있어 속독으로는 그 깊이에 이르기 어렵다. 허나 정독은 시간과 에너지의 소모가 크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모든 책을 이렇게 읽을 수는 없다. 인생은 짧고 읽어야 할 책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두가지 독서법의 균형을 어떻게 찾으면 될가? 이른바 ‘속독과 정독을 겸비한 독서’란 가능한 것일가?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아래와 같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책의 성격에 따라 읽기 방식을 달리하는 것이다. 처음 접하는 분야의 입문서나 대중교양서는 속독으로 전체 맥락을 파악하고 그중에서도 깊이 리해하고 싶은 부분이나 내 삶에 직접적인 울림을 주는 구절은 정독으로 다시 읽는다.
둘째, 속독과 정독을 의식적으로 번갈아가며 읽는 방법이다. 한 장절을 속독으로 훑은 후 가장 인상 깊었던 단락을 골라 정독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작은 노트를 준비해 속독중에 발견한 의문점이나 인상적인 키워드를 기록해두고 정독할 때 그 질문들에 집중하는 것이다. 지난기 <독서만필-책을 읽는데...독후감까지?>에서 독서 노트의 방법에 대해 상세하게 다룬 바 있다. 이렇게 하면 속독의 효률성과 정독의 깊이를 동시에 취할 수 있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의 목적에 대한 성찰이다. 어떤 책을 왜 읽는가에 따라 독서법은 자연스럽게 결정되여야 한다. 새로운 지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독서라면 속독이 유리하고 내면의 성숙이나 사유의 깊이를 더하기 위한 독서라면 정독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훌륭한 책들은 이 두가지 목적을 동시에 충족시킨다. 그래서 독서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예술에 가깝다. 마치 호흡처럼 들이쉬고 내쉬는 두가지 움직임이 하나의 생명을 유지하듯 독서에도 그에 맞는 호흡법이 필요하다. 호흡처럼 자연스럽게, 필요에 따라 조절하는 유연함이 필요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속독이든 정독이든, 이 둘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다. 책은 우리에게 지식만 주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우리의 사고 구조를 변화시키고 감수성을 풍요롭게 하며 삶의 관점을 확장하는데 속독이 그 확장의 폭을 담당한다면 정독은 그 깊이를 책임진다.
어느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지금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얻고저 하는지 분명히 하는 일, 그리고 그에 따라 읽기 방식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아가 독서하는 그 시간이 자신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킨 시간이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길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