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넘나드는 생명형식
发布时间:26-03-24 09:01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내 모든 에너지는 움직임에서 비롯되였다. 뻐스의 진동, 자동차의 엔진소리, 기차와 유람선의 흔들림.”

뽈스까의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대표작인 《방랑자들》은 려행 그리고 떠남과 관련된 100여편이 넘는 짧고 긴 다양한 에피소드를 기록하고 있다.

휴가를 떠났다가 느닷없이 부인과 아이를 잃어버린 남자, 죽어가는 첫사랑으로부터 은밀한 부탁을 받고 수십년 만에 모국을 방문하는 연구원, 장애인 아들을 보살피며 고단한 삶을 살다가 일상에서 탈출해 지하철역 로숙자로 살아가는 녀인, 프랑스에서 사망한 쇼팽의 심장을 몰래 숨긴 채 모국인 뽈스까로 돌아온 쇼팽의 누이, 다리를 절단한 뒤 정신착란증에 시달리는 해부학자, 지중해 유람선으로 생애 마지막 려행을 떠나는 그리스 문명의 권위자…

어딘가로부터, 무엇인가로부터, 누군가로부터, 혹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사람들, 아니면 어딘가를, 무엇을, 누군가를, 혹은 자기 자신을 향해 다다르려 애쓰는 사람들… 이렇듯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역 주변에서 로숙하는 정체 모를 로파의 에피소드를 통해 저자는 사람이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어떤 장소나 사물에 얽매이게 되면 근본적으로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력설한다.

《방랑자들》은 여러 이야기를 직조한 다성적 구성을 취하고 있는‘별무리 소설’이다. 불과 10여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텍스트도 있고 긴 분량의 이야기도 있다. 려행기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실은 독자로 하여금 한문장 한문장 곱씹듯이 읽으며 사색을 하도록 유도하는 철학적인 이야기들이다. 또 읽을 때마다 류동적이고 가변적인 텍스트이기도 하다.

쟝르 또한 다양해서 려행일지나 탐방기는 물론 편지나 강연록 형식의 글들도 공존한다. 그중에서 인체나 내장기관을 전시한 박물관에 대한 관람기록은 추리물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오랜 시간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에서 쓴 에세이도 있고 바쁜 려정을 쪼개 기차역에서 무릎 우에 책을 받쳐놓고 쪽지에 휘갈겨 쓴 단상도 있다. 트렁크에 담긴 구겨진 짐처럼 두서없고 혼란스러운 형태로 다채로운 에피소드가 쉼없이 라렬된다.

각각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또한 시간적, 공간적으로 서로 단절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작품 전체를 놓고 보면 서로 유기적으로 련결되는 지점이 발견된다. 공항에서 려행객들이 끊임없이 서로 마주치고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류사하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된 에피소드의 후속 스토리가 뒤부분에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 즈음, 다음 에피소드의 공간적 배경에 대한 단서가 은밀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단서를 찾아보고 서로 련결되는 요소들을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이 책에서 부단히 회자되는 려행이란 단순히 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횡단하는 물리적인 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을 향한 려행, 묻어두었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시도, 시련과 고통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이 방대한 려정에 포함된다.

독자의 립장에서 이 책을 통해 직접 가보지 못한 이국적인 장소들을 간접적으로 방문해보고 다양한 정보를 접하게 되는 것, 지구촌 곳곳에서 여러 흥미로운 인물과 그들의 생의 단면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또한 일종의 려행이라 할 수 있겠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독자들은 잠시 려행자가 된 것처럼 깊이 몰입하게 되고 저자의 천재적인 통찰에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201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카르추크는 일찍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타인과 교감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야말로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토로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본질적으로 경계와 단절을 허무는 글쓰기를 통한, 타자를 향한 공감과 련민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대표작이 바로 《방랑자들》이다.

우리는 생이 시작된 순간부터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적 한계에 때로는 쫓기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이 책의 제목인 ‘방랑자들’이란 궁극적으로 현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가 싶다.연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