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내 마음에 수채화 한점이
(심양)심용숙
느릅나무, 버드나무들이 뒤섞여 자라고 살구꽃, 배꽃이 화사하게 피는 교정의 뒤켠에는 회칠을 하얗게 한 울바자가 둘러져 있다. 깜찍한 패말들이 시뚝해서 서있는 70여평방 되는 로동실험기지인 것이다.
휴식종이 울리기 바쁘게 애들은 한달음에 달려가서 참새들처럼 재잘거리며 바람에 비스듬해진 울바자를 바로세워주거니 풀을 뽑아주거니 사랑가 정성을 쏟아붓군 한다. 말 그대로 힐링의 공간이요 희망과 기대를 안겨주는 충전의 장소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지 잡초가 말끔히 제거된 흙 속에서 파아란 새싹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도라지밭이였다. 올해로 이태째, 빨간 띠로 삼각둘레를 쳐놓은 십여평 남짓한 터전에서 도라지싹이 올라와주었던 것이다. 봄에 새싹이 돋아오르더니 여름 소나기도 이겨내고 어느새 하얀 웃음을 짓는 도라지의 함초롬한 모습은 볼수록 정겨웠다.
내 고향은 끝간데없이 무연한 벌, 아무리 사방팔방 둘러보아도 산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는 평원지대이다. 봄이면 푸른 주단이 깔리고 가을이면 금빛물 함뿍 들쓴 채 다소곳한 내 고향이다.
옛날부터 도라지철이 돌아오면 엄마들은 멜빵 달린 자루를 하나씩 들고 웃고 떠들며 동구 밖을 나섰다. 30리 남짓한 산행길, 이삭주이때면 늘 엄마 뒤를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더니던 나도 도라지철의 산행길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집에 박혀있었다. 어서 해 떨어져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면서.
해가 지고 엄마마중을 가신 아버지가 사라진지도 이슥해서야 벅적거리는 소리가 골목길에서 터져나온다. 문을 열어보면 아버지는 자전거를 밀고 삽짝문으로 들어서시고 엄마가 그 뒤를 따르신다. 부엌에 뭔가 쿵 내려놓는 소리, 15촉짜리 어둑시그레한 등불 아래 비쳐지는 엄마와 아버지의 얼굴은 밤인데도 환하시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버치에 둘러앉아 작업을 시작한다. 매끈한 몸매, 미끄러지는 듯한 껍질, 하얀 속살, 그게 도라지이다. 거기에 주고받는 이야기며 낮에 도라지를 캐면서 노다지판이라 할만한 도라지밭을 만나 환성을 지르던 일이며 순이 엄마의 머리수건이 벗겨지던 일까지 그야말로 도라지보다 더 많은 재미나는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온다.
이튿날 아침은 가관이다. 마당을 다 차지한 우유빛 도라지들의 일광욕시간인 것이다. 우리 마을에서는 산나물중에서도 4보배를 꼽는다. 고사리, 더덕, 버섯, 도라지가 그 주인공들이다. 그중에서도 도라지는 진미중의 진미이다. 어렵고 궁색하던 그 시절에도 도라지는 우리에게 배고픔을 달래주었을 뿐만 아니라 고생 뒤끝에 찾아오는 여유로움조차 안겨주곤 했다.
고향에서는 초저녁 별들이 재롱을 부리기 시작할 무렵이면 산행을 했던 엄마들이 마을 뒤에 있는 철북으로 향한다. 철둑 아래에는 수면을 잘 알아볼 수 없는 늪이 있었는데 다리목 가장자리는 유명한 빨래터이자 녀인들의 천연적인 목욕탕이기도 했다.
엄마들은 사위를 둘러보고는 첨벙거리며 물에 들어가서 어푸 어푸 시원하다를 련발하다가는 그대로 풍덩 주저앉아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린다. 엄마의 등을 밀어드린 나는 언덕에 앉아 뭇별들을 바라보며 환상에 잠긴다. 그 순간 웃음소리, 코노래소리가 밤장막을 흔들어 깨고 멀리 바라보이는 마을의 누르끼레한 불빛은 아늑한 평화를 가져다준다.
코로나 전해의 일이다. 7월에 엄마의 생신을 맞으며 고향행을 했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언니와 둘이서 산책길에 나섰다. 도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맑은 공기, 고즈넉한 마을길, 장정들이 모여 담소를 즐기던 옛 그늘터는 벌써 사라진지 오래고 희희락락 웃음으로 차넘치던 빨래터도 상처의 흔적처럼 남아있을 뿐이였다. 알뜰살뜰 가꾸던 채마전도 자취를 감추었고 옥수수밭의 키다리 옥수수들만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춤추고 있었다.
뒤골목으로 접어드니 갑자기 오리, 게사니들이 꿱꿱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어느 마당 너른 집의 철책 안에서 오리며 게사니, 닭들이 살판 만났다는 듯이 저들만의 세상을 즐기고 있었다. 한쪽에 놓인 걸상에는 주인 내외가 땀을 들이며 한담하고 있었다.
너무 몰라보게 변한 고향의 모습을 신기한 듯 이리저리 살펴보던 나는 그만 깜짝 놀라 굳어지고 말았다. 글쎄 동쪽 울바자 곁에 하얀 도라지꽃들이 흐드러지고 있는게 아닌가.
웬 도라지꽃?
내가 놀라는 모습이 주인 내외한테 전달이 된 모양이였다. 안주인이 대문을 열고 나오며 말을 건넨다. 작년 가을에 이 집에 세를 들었는데 터전이 너른데다가 세간살이와 농기구들이 구전해 아주 그저 그만이라고 했다. 그렇게 집주인한테서 도라지까지 넘겨받았다며 자랑하는 안주인이 너무 부러웠다. 우리는 얼른 인사를 하고 헤여졌다. 도라지꽃이 피여있는 한 주인이 언젠가는 꼭 돌아와주지 않을가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울바자에 남겨둔채.
교정에 자리잡은 도라지, 세월의 강을 넘어 뒤집의 울바자 곁에 자리잡은 도라지, 그 해맑은 웃음이며 그 고개 숙인 다소곳함이며가 어쩜 저리도 우리 어머니들 같을가.
고향사람이 아니더라도 고향의 산나물들을 두둑히 챙겨주시는 넉넉함, 된장이며 고추장이며 특히 김장철 같을 때면 너나없이 모여서 서로 도와주던 그 후덕함, 이제 60여호 되던 소대가 대여섯호 밖에 남지 않았지만 인정만큼은 그때랑 절대 못지지 않는 고향마을이다.
고향의 도라지를 보면 <도라지>타령 한소절이 절로 나온다. 거기에 어깨춤은 덤이라 해야겠다.
내 고향의 도라지, 그것은 정녕 언제나 퇴색할 줄 모르는 내 마음의 영원한 수채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