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이 해가 떠난 자리에 부디 지혜롭고 밝은 추억 한 자락이 남아있기를
发布时间:24-11-26 10:45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수필

이 해가 떠난 자리에 부디 지혜롭고 밝은 추억 한 자락이 남아있기를

(심양) 전정환

다시 세밑이다.

년초 어느 한편의 칼럼에서 세월은 전광석화와 같다고, 어영부영하다가는 곧 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만 련발 복창하는 허망한 시간이 찾아온다고 개탄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직 봄이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의 시간이였다.

한 해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러니까 말씀은 그렇게 여쭈면서도, 이건 어딘가 어불성설의 과장이고 너무 선을 넘어선 어법이라는 느낌이 살짝 들기도 했다.

근데 그날이 바로 눈 앞에 박두했다. 래일 모레 당장 초하루날이다.

이제 와서 보니 그때 그게 어디 과장이고 선을 넘어선 어법이란 말인가! 천번만번 딱 들어맞는 말씀 아니였던가!

이렇게 세밑이 되면 세월이 정말 번개불처럼 번쩍거리는 속도로 내달리고 있다는 느낌이 찐하게, 강력하게 찾아온다.

정말 전광석화요, 석화광음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꼼짝없이 또 한살 더 ‘잡수는’ 순간이다!

아쉬워도 서글퍼도 꼼짝없이 또 한 해 보내는 찰나이다!

갑진년은 이제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후유, 이놈의 세월 참 야속도 하시다!

말 허탈하다는 생각이 복부 팽만하게 차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또 한해를 더한 우리 삶이 남긴 흔적은 뭘가 하는 생각을 한번 해본다. 아무리 허탈해도 흘러간 세월을 돌이켜보며 숙명적으로 던져야 하는 질문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답이 아리송하다. 아니, 제대로 걸러지는 게 없다. 그저 누구에게나 똑같은 몫으로 차례진 삶을 살아냈을뿐이다. 자질구레하게 겪어야만 하는 신변잡사들로 꽉 채워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손 놓으면 안된다!

세월의 어느 갈피에서, 생의 어느 주름에서 조용히 소리없이 겸손하게 좌반을 하고 또아리를 틀고 있을 수도 있는, 의미있는 흔적을 찾아내야 한다. 찾아내서 앞으로 살아가는 날의 길라잡이가 되고 모델이 되게 해야 한다. 허망한 속에서 허망하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노력 또한 허망함을 몰아내는 처방이 아닐까!

이 해가 떠난 어느 지점에, 어느 자리에, 내가 미처 살펴보지 못한 곳에, 내가 스치고 지나간 곳에 부디 지혜롭고 밝은 추억 한자락이라도 남아있기를 간절하게 소원해본다.

갑진년 잘 가시라!고 하지 않겠다.

을사년 반갑다!고 웨치지 않겠다.

그리고 새해 복많이 받으시라는 인사도 생략하겠다.

그러면 한살 더 먹는 감각만 더 커지고 부풀어 오를 것 같아서!

그러면 한해 더 저물어가는 아픔만 더 아리고 쓰려날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