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엄마, 엄마 보러 제가 한국으로 갈게요
发布时间:24-09-03 08:48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수필

엄마, 엄마 보러 제가 한국으로 갈게요

      (심양) 조미향

28일간의 집중격리가 끝나 드디어 집에 돌아온 엄마를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코로나가 아니였으면, 28일간의 집중격리가 아니였으면 나는 엄마가 내 마음 속에 차지하는 비중이 이처럼 큰 줄을 영영 몰랐을 수도 있었다. 내가 소학교 4학년 때 한국에 처음 가신 뒤로 손녀딸 출생후 입국하여 3년간 육아에 동참한 외에는 비자가 만기될 때마다 돌아와 잠간씩 머무르곤 했으니 엄마와 나는 사실 두 나라 사람인 셈이였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 3, 40대의 가장 꽃다운 시절을 이국에서 온갖 궂을 일에 바친 엄마가 륙순을 바라보는 시점에 집에 돌아온다고 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시도 때도 없이 엄마 얼굴을 머리 속에 떨오리는 자신을 놀라웁게 발견했었다. 그리고 엄마가 심양공항에 도착하여 집중격리에 들어간 그날부터는 엄마 생각에 밤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었다.  엄마가 집중격리로 보낸 28일간이 나에겐 엄마가 지금껏 한국에 있은 기간보다 더 길게 느껴지던 28일이였다.

엄마가 드디어 돌아왔다. 이제부터 엄마와 같이 산다고 생각하니 기쁘기 그지없다. 엄마는 아직까지 녀성스런 외모에 처녀같은 완벽한 몸매를 자랑하고 계셨다. 이전에 어쩌다 둘이 같이 거리에 나가면 친언니냐는 질문을 받으면 수없이 받아왔고 엄마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귀딱지가 앉도록 들어오면서 기분이 언짢을 때가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이번에는 이런 엄마가 아주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엄마는 이전에도 그러하셨지만 지금도 여전하셨다. 자신의 몸관리에 철저하고 매사에 추호의 흐트러짐이 없으셨다. 딸애를 키우랴 출근하랴 정신이 없어서 화장도 않고 티쪼가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문을 나설 때면 엄마는 어김없이 녀자는 잠 잘 때 빼고는 항상 몸을 가꿔야 한다며 불만을 토하신다. 어쩌다 친구들과의 모임이 좀 길어져 귀가가 늦어지면 어김없이 문자를 보내와 “어쩜 왜 친구 밖에 모르느냐? 친구가 그렇게 좋으면 친구랑 살지 그래, 건강 생각을 안하느냐?”고 닥달이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런 푸념 또한 엄마 나름대로의 자식사랑이라 생각하면서 다음엔 꼭 조금하겠다고 약속드리곤 하였었다.

엄마와 같이 생활한지 옹근 1년이 지난 시점에서다. 어느날 역시 친구들이랑 수다를 떨다가 한밤중이 지나서야 집에 돌아왔었다. 엄마방에는 그 때까지 불이 켜져있었다. 헌데 예전같으면 왜 이제야 돌아오냐며 한마디 했을 엄마가 잠자코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오늘뿐이 아닌 언제부터 엄마의 잔소리가 없어진 것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내 눈치를 살피던 엄마의 모습도 머리 속에 떠올랐다.

나는 지난 1년간 엄마와 함께 보낸 나날들을 돌이켜보았다. 반평생 한국에서 궂은 일 마른 일 가리지 않고 바삐 보내던 엄마가 중국에서 매일매일 하는 일이란 고작해야 반찬 사러 한번 밖에 나가는 것이였다. 말이 통하지 않고 아파트단지에 하는 사람이라곤 한사람도 없어 하루 하루 고독하게 보냈을 것이 뻔했다. 그런 상황을 미리 감안하고 조처를 취하지 못한 내 불찰이 컸다.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엄마를 편하게 해드리는 것일가 고민을 거듭했다.

어느날 저녁 나는 엄마한테 한국에 다시 나가고 싶지 않은가고 조심히 여쭈었다. 가고 싶으면 내 걱정은 말고 나가시라고 했다. 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엄마 얼굴에는 오랜만에 환한 웃음이 피여올랐다. 그동안 얼마나 답답하셨을가? 한국 가시라는 말 한마디에 그처럼 좋아하시는 엄마를 바라보며 나는 내 자신의 불효를 자책했다. 나는 엄마를 한국에 보내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곧 환갑인 엄마는 그렇게 계획에 없던 한국행을 하게 되였다. 요즘 나는 한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엄마의 영상메세지를 받을 때마다 엄마를 한국에 보내드린 것이 엄마 환갑을 맞아 엄마에게 드린 효도의 선물이라 생각하며 지금까지 가장 잘 한 일로 간주한다. 비록 출근하랴, 딸애를 키울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지만 엄마가 좋아하시니 정신적으로 그 어느때보다 편하고 좋다.

엄마, 나중엔 제가 엄마 보러 한국으로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