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보의 궁의
(심양)동혜군 작 리상광 역
“꼬꼬댁…꼬꼬댁…”
시끄러운 닭 울음소리에 두보는 눈을 가까스로 떴다. 그는 눈가에 눅눅히 맺힌 눈곱을 닦고 침대 옆의 꽃문양을 조각한 옷걸이를 바라보았다. 옷걸이에 걸어놓은 궁의는 아침 바람 속에서 자태가 우아한 녀인처럼 가느다란 허리를 하느작이며 춤을 추었다. 한동안 눈여겨 보다가 두보는 피식 웃었다. 엄습해오는 속쓰림에 그는 비틀거리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양치질과 세면을 하고나니 많이 개운해졌다. 그는 어제밤에 가져온 칡뿌리를 씻어 물을 가득 채운 약탕관에 넣고 화로 우에 올려 끓이기 시작하였다.
칡뿌리는 리은택이 선물한 것이다. 오래 전에 현종이 천하에 내린 ‘한 가지 재능에 능통한 자’는 장안으로 상경하여 과거를 치르라는 어명을 받들고 수많은 선비들이 경성으로 모여들었다. 화려한 문채를 앞세워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의 길로 들어서나 싶더니 그 망할 리림보 늙은이가 ‘민간에 루락한 인재가 없다’는 촌극을 벌이는 바람에 응시한 선비들이 모두 락방하고 말았다. 보국무문의 한을 뼈저리게 느낀 두보는 부득이하게 경성의 고관대작 사이를 전전하면서 헌부(献赋)하고 투증(投赠)과 간알(干谒)을 일삼았다.
그러나 그깟 닭살 돋는 아부시 몇 마디에 어물쩍 넘어갈 고관대작들이 아니였다. 돈이 없는데 제아무리 고관대작이라한들 무엇으로 그 상급 계층에 상납한단 말인가. 함께 상경한 리은택은 두보에 비해 문채가 떨어지긴 하지만 집안이 부유한 편이라 2년도 안되여 배, 병기 그리고 죽기(竹器) 갈의(葛衣) 등 잡화의 제작을 관장하는 장작감(将作监)의 중교령(中校令)으로 임용되였다. 비록 이 종8품의 벼슬은 리은택의 당초 원대한 포부와 천양지차이지만 그나마 경성에서 발을 붙인 셈이여서 의식주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였다. 이에 비해, 두보는 문단의 유명세를 빌어 각종 연회에 가끔 참석하지만 마누라와 자식을 먹여살리기는커녕 아침이면 저녁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를 면치 못했다.
천보(天宝) 10년 정월, 세 편의 <대례부>를 통해 현종은 장안성에 두보라는 인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고 그를 집현원 대제(待制)로 임명했다. 이제서야 자신의 포부를 맘껏 펼칠 수 있다고 생각한 두보는 이 임명직마저도 후보군에 그쳤다는 현실을 뒤늦게 알았다. 게다가 그 망할 리림보 늙은이가 시험을 주관했으니 그는 아무 관직도 얻지 못하였다. 그날 성전(盛典)에서 두보를 호명했던 현종도 그를 말끔히 잊은지 오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삼궁륙원에 수십 명의 황자 공주를 거느린 황상폐하께서 아부 아닌척 한 아부의 시를 헌정한 일개 가난한 선비를 어찌 기억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몇해 동안 리은택은 그를 박대하지 않았다. 그의 체면을 고려하여 자주 주점에서 푸짐한 료리로 대접했고 불시로 발작하는 그의 주사도 받아주었다. 어떤 때에는 그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관영 작업장으로 데려가 죽기, 갈의의 제작 과정을 구경시켰다.
침포 과정을 거친 칡넝쿨에서 뽑혀 나오는 결백하고 섬세한 실들을 볼 적마다 두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시를 읊조렸다. “저기 칡 캐러 가는 녀인이여/ 님을 하루만 보지 못해도/ 석 달이나 지난 듯하네” “칡넝쿨이 저리도 길어 산간에 널리 퍼졌구나/ 잎은 푸르디 푸르구나 ” “갈포로 엮은 신발로 어찌 서리 내린 땅을 밟을고/ 매마른 손으로 어찌 옷 바느질을 할고”… 이럴 때 작업장 녀공이 두보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광채가 유난히 빛났다. 두보의 심장도 녀공의 눈빛에 두근거리군 했다. 그 시절, 두보가 궁의를 입은 리은택을 겉으로든 속으로든 부러워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가끔 술김에 입어보자 했지만 리은택은 매번 두 눈을 부릅뜨며 뼈마디 굵은 손을 한사코 흔들었다. 에누리 없는 거절이였다.
궁의를 보물로 아끼는 리은택이 괴씸했을가. 두보는 일부러 <진서>(晋书) 중의 “온궁교갈, 량전쟁영, 락이수주, 쵀이금경”(温宫胶葛,凉殿峥嵘,络以隋珠,綷以金镜)이란 구절을 인용해 그를 난처하게 하였다. 칡 장관인 당신이 칡가루로 풀을 만들어 황궁의 벽에 바르면 궁전은 봄처럼 따뜻할테고 그러면 리은택은 지금의 리은택이 아닐 거라는 조롱이였다. 무심코 내뱉은 롱담이라 두보는 마음에 두지 않았지만 리은택은 이를 진지하게 고심하며 칡풀의 조제법을 얻기 위해 온 사방을 수소문하였다. 그러나 헛것으로 끝나버렸다.
안사의란 이후, 현종이 서쪽으로 몽진하고 태자 리형(李亨)이 령무(灵武)에서 즉위하여 년호를 지덕(至德)으로 정하였다. 숙종이 즉위한 소식을 접한 두보는 지체없이 찾아갔다. 단오절인 어제, 숙종이 관례대로 조정 대신에게 여름옷을 하사하였다. 두보에게도 한 벌 보내오면서 좌습유(左拾遗)에 임명한다는 랑보도 함께 전달하였다. 45년이란 세월을 허송했다는 자괴감에 빠졌던 두보의 마음 속에서 얼마나 큰 파란이 일었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저녁에 두보는 자신의 이름을 수놓은 궁의를 착용하고 리은택을 찾아가 봉상(凤翔) 성내에서 유명한 서부(西府)주점에 데려갔다. 착석한후 두보는 큰 맘을 먹고 난생 처음으로 호로계(葫芦鸡), 곽자어(锅子鱼)를 주문하고 두가지 안주도 추가하였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아 간 즈음, 리은택은 포대 하나를 두보 앞으로 밀어냈다.
열어보니 칡 한 보따리에 거친 칡베 옷 두 벌이였다.
“리형, 이게 어인 일이오?”
“두습유, 자네 잘 모르겠지만 이 칡뿌리는 참 좋은 물건이오. <상한론>에서도 ‘태양병에 목덜미와 등이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 못하면서도 땀이 나고 바람 쐬는 것을 싫어하는 병은 갈근탕으로 치료한다’라고 언급한 바 있소. 자네가 나한테 목과 어깨가 계속 아프다고 호소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매일 칡뿌리탕을 복용하면 꼭 치유될걸세. 게다가 숙취 해소 효능도 있으니 래일 아침에 끓여서 마셔 보게나. 머리가 개운해지고 주독이 다 빠질거네.” 라고 말하면서 리은택은 거친 칡베 옷을 가리켰다. “이 옷의 원단은 거친 칡베여서 가는 칡베만치 부드럽고 따뜻하지 못하네만, 피부에 닿는 촉감이 티 없는 풀잎 이슬처럼 아주 말끔하네. 자네와 나는 막역지교일세. 앞으로 황상 앞에서 나 대신 좋은 말씀 많이 부탁하겠네!”
두보는 저도 모르게 섬찟했다. 좌습유는 중교령과 같은 종8품인줄 빤히 알고 있는 리은택이였다. 그럼에도 내가 간관(谏官)인만큼 황상을 대면하는 회수가 많다는 리유로 종래로 내게 선물한 적 없던, 평소 ‘두형’, ‘두형’하며 허물없던 리은택이 아부하기 시작하였다. 아! 예전의 리형이 나를 떠나겠구만.
두보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리은택의 손을 꾹 잡았다. “남아가 공명을 이룩하는 것 또한 나이 든 다음이니라. 리형, 오늘 통음(痛饮)해 보는게 어떻소?”
칡뿌리탕이 보글거리는 소리가 회억 속에 빠진 두보를 잡아 당겼다. 그는 탕약을 란꽃 문양을 새긴 사기대접에 붓고 조리대 우에 놓아 식혔다. 침실로 돌아온 두보는 조심스레 둥근 꽃문양을 수놓은 궁의를 입고 먼지가 두텁게 앉은 구리거울 앞에서 앞뒤를 비춰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희끗희끗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읊었다.
“궁의 또한 명성 있으니 단오날에 은혜의 영광 입었네.
섬세한 칡베 옷은 미풍처럼 부드럽고 릉라는 눈처럼 가볍네.
옷깃이 청량하니 무더운 여름에 입어도 시원하고
궁의 크기가 맘에 드니, 황상의 은정 평생 지고 가네.”
대력(大历) 5년 겨울, 두보는 담주(潭州)에서 악양(岳阳) 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도중에서 갑자기 오른팔이 무기력하고 눈이 보이다 말다를 반복하는 증상이 나타났다. 그러다 배가 악양에 도착하기 전에 두보는 이승을 하직하였다. 그의 유물에서 사공은 성상이 하사한 그 궁의를 발견하였다. 해진 곳이 있었지만 빛깔은 여전히 산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