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책임감
发布时间:24-05-14 10:43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소설            

책임감

                  (철령) 박병대

소나기가 쏟아지는 여름밤이 깊어갔다. 침대 우에 누운 경식 선생은 어쩐지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이리 돌아눕고 저리 돌아누으며 잠을 청했으나 정신은 말똥말똥하기만 하다. 낮에 겪었던 일이 자꾸 머리 속을 맴돌아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가 왜 주장을 끝까지 굳하지 못했을가? 그까짓 려행이 뭐라고 내가 이런 큰 실수를 저질러 남을 괴롭히고 자신까지 괴롭힌단 말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후회가 막심했다.

오늘 저녁 무렵에 경식 선생은 안해와 함께 알곡시장에 쌀 사러 갔었다. 쌀값을 치르고나서 시장의 대문을 나오는데 뒤에서 "선생님!"하는 웬 녀인의 챙챙한 목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뒤를 돌아보니 휠체어에 앉은 50대의 녀인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유선생님, 안녕하세요? "

"예, 안녕하세요?"

경식선생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제가 누군지 알아보시겠어요?"

파마머리를 한 동글납작하고 하얀 얼굴의 까만 눈동자는 류달리 밝은 빛을 뿜고있었다. 경식 선생의 사색은 번개같이 작동했다. 배워준 제자들가운데 누가 다리를 쓰지 못했던가? 50대의 녀인이니 분명히 30여년 전의 학생이리라. 그의 뇌리에는 33년 전 시골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때의 일들이 주마등같이 뇌리를 스쳐갔다.

"영순이가 아니야? 자칫하면 너를 못 알아볼 뻔 했네."

"선생님은 기억력이 정말 비상하시네요. 력사선생님은 저를 알아보지 못하시던데요."

"내가 어찌 영순이를 몰라보겠나? 영순이는 예쁘고 공부도 남달리 잘했는데!"

경식 선생은 그때 영순이가 공부를 잘했다기보다 그녀가 지체장애자였기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았었다. 그는 영순이를 보고 그동안 고생이 얼마나 심했느냐고 인사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공연히 입을 잘못 놀려 그녀의 아픈 곳을 건드릴가봐 두려웠던 것이였다.

그때 영순이는 학교에서 3리 떨어진 조선족마을에 살았는데 일곱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두 다리를 쓰지 못하였다. 집 근처에 있는 소학교는 쌍지팽이를 짚고 다닐 수 있어서 무난히 졸업했지만 심한 지체장애자이기에 현성에 있는 중학교에는 진학할 꿈도 꾸지 못하고 2년간 집안에 갇혀있었다. 마침 이웃마을에 조선족중학교가 세워지자 구지욕이 강한 그녀는 한사코 학교에 다니겠다고 떼질해서 간신히 부모의 허락을 받고 중학교에 진학했다. 그녀는 한마을 학생들의 자전거신세를 지며 등교했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번도 지각한 적이 없었다. 동년급 학생들보다 두어살 이상인 영순이는 철도 일찍 들었고 공부에도 이악스러웠다. 선생님이 강의할 때 그녀의 새별같은 눈동자는 언제나 선생님의 입과 손끝을 따라 움직였고 학습성적도 학급에서 상위권에 들었기에 수학과임이자 반주임인 경식 선생은 그녀를 남달리 동정하였고 쉬는 시간이면 그녀에게 학습에서 부딪치는 애로를 물어보았고 종종 수학문제를 풀이하는 기교도 자세히 알려주었다. 소나기가 퍼붓는 여름이나 밤에 폭설이 쏟아진 겨울 아침이면 경식 선생은 누구보다 영순이의 등교가 걱정되여 일찍 등교한 학생들을 시켜 마중하게 했고 그도 교정 밖에 나가 먼 곳을 내다보다가 빨간 머리수건을 쓴 영순이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와야 사무실에 들어가군 했었다.

 영순이가 9학년을 졸업하던 그 해 여름에 현교육국의 학교분포조절결정에 의해 시골중학교가 현성중학교와 합병하게 되여 경식 선생은 현성중학에 들어왔는데 교육사업의 압력이 나날이 커져 영순이를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고 후에는 그녀의 소식마저 듣지 못했었다.

"선생님, 정말 오래만이예요. 정년 퇴직하신지 여러해 잘 되셨지요? 건강은 어떠세요?"
   "눈깜짝할 새에 30년이 지났구나. 다행히 몸은 이만하면 괜찮은 셈이구. 그런데 영순이는 지금 잘 지내고 있니?"

"그럭저럭 밥이나 먹고 지내지요."

영순이는 눈동자엔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아무렴, 영순이는 워낙 궁량이 깊고 슬기로우니 앞길을 잘 개척하고 있겠지." 경식 선생은 그녀가 결혼했는지 생활형편이 어떠한지 무척 궁금했지만 차마 일일이 물을 수 없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께서 신문에 발표한 교원수기도 읽었고 8년 전에는 TV프로에 나온 선생님의 모습도 얼핏 보았어요. 그때 저는 얼마나 기뻤던지 몰랐어요."

"그래? 그까짓게 뭐 대단한 일이라구, 이젠 성 쌓다 남은 돌 신세가 된 걸 뭐."

경식 선생은 빙그레 웃으며 쑥스러운듯 반백이 넘은 머리카락을 손빗질했다.

"아니예요. 선생님께선 여열(余热)을 잘 발휘하고 계시겠지요. 얘, 경애야, 선생님께 인사올려라. 유선생님은 옛날 엄마네 반주임이시다."

영순이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열너덧살 쯤 돼보이는 량태머리의 예쁘장한 소녀가 어머니의 앞에 나서더니 깎듯이 고개를 숙이였다.

"따님이 정말 귀엽게 생겼구나. 엄마를 꼭 빼닮았으니 무척 총명하겠구나. 너 몇학년에 다니지?"

경식 선생은 경애의 반지르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다정하게 물었다.

"이제 초중2학년에 다닙니다."

"공부는 잘하겠구나."

"다른 과목은 괜찮은데 아직 기하공부에 미립이 트지 못해서 애먹고 있네요."

딸애기 대답하기 전에 영순이가 대답했다.

"그건 왜 그럴가?"

"애가 워낙 활발성이 차한데다가 조선족마을에서 나고 자라서 한어가 약해요. 그런데 요즘 젊은 선생님들이 과당수업을 몽땅 한어로 하니 애가 아직 적응되지 못하나봐요."

"그것 참 안됐는데, 그럼 엄마한테 도움을 받으면 어떨가? 너의 엄마는 이전에 수학공부를 썩 잘했는데."

"선생님은 정말 사람을 웃기시네요. 그 시절에 우리가 배운 지식이야 수박 겉 핥기였잖아요? 그리고 30여년이나 지난 지금 저는 그때 배운 걸 까맣게 잊어버렸는데요." 

영순이는 박씨같이 하얀 이를 내보이면서 방긋 웃었다.

"하긴 그래. 지금은 교육이 정상 궤도에 올랐고 교수내용도 예전보다 훨씬 깊어졌으니까."

"선생님께서는 지금도 바삐 보내고 계셔요?"

"낮에는 등산도 하고 사회활동에 참가하느라 종일 밖에 나돌고 저녁에는 책을 읽고 TV나 보면서 한가롭게 지내고 있지."

"그러세요?"

영순이의 환해지던 얼굴에 약간 어두운 그림자가 얼핏 스쳐지나갔다. 경애의 수학공부를 좀 지도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으나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는 눈치였다.

(경애를 며칠동안 지도해주겠다고 말할가? 그런데 짬이 어디 있나? 래일 모레 로인협회에서 조직한 북경유람에 가야잖나? 한평생 북경유람이 소원이였는데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다른 기회가 있을가?)

"선생님, 이틀 뒤에 로인협회에서 북경유람을 떠난다지요? 절호의 기횐데 놓치지 마시고 잘다녀오세요."

"그런데 경애 공부가 걱정되여서..."

"선생님, 우리 경애때문에 심려하지 마시고 잘 다녀오세요. 그리고 이건 제가 사는 셋집 전화번호예요. 짬이 있을 때 찾아오세요. 그럼 선생님, 어서 가보셔요. 사모님께서 밀차군과 함께 떠났는데요."

고뇌에 잠겨 어벙벙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경식 선생은 그녀의 말을 듣고 앞을 내다보았다. 인력거군이 쌀포대를 싣고 30여메터나 갔고 그 뒤에는 안해가 종종 걸음으로 쫓아가고 있었다.

"참 미안하게 됐구나. 며칠 뒤 다시 보자꾸나."

경식 선생은 어정쩡하게 영순이와 작별하고 길에 나섰으나 마치 못먹을 음식이나 먹은 듯 속이 개운하지 못하였다. 지금이 팔월 하순이니 유람을 갔다오면 바로 개학할 때가 아닌가? 개학하면 애들이 온종일 교정에 붙어있어야 하니 개별지도를 받으려고 해도 짬이 없지 않은가? 그리고 앞의 지식을 채 소화하지 못한 경애가 새 것을 배우면서 옛 것을 복습할 여유도 없지 않은가? 림시 듣기 좋게 뒤에 보자는 말은 했으나 영순이에게 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텐데. 내가 이번에 북경유람을 가지 못한다고 평생 가지 못할가?  영순이가 만약 장애자가 아니고 부자거나 사회적으로 신분이 뜨르르한 사람이라면 내 마음이 이다지도 괴로울가? 영순이는 지체장애자였기에 꽃나이에 시집도 못갔을게고 리상적인 배우자도 만나지 못했을 게 아닌가? 걔의 살림형편은 묻지 않아도 불보듯 뻔한 게 아닌가? 그런 어려운 처지에서도 가정교사를 구하려는 걸 보니 귀한 딸애를 출세시키고 싶어하는 모성애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내가 제자에 대한 교사의 책임이 평생 이어져야 한다는 도리를 왜 몰랐던가? 옛 제자의 어려움을 도외시한다는 것은 스승으로서의 도리가 도저히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북경유람을 자파하고 경애의 공부를 지도해주겠다고 한다면 영순이가 한사코 동의하지 않겠으니 억지 공사로 그녀에게 너무나 큰 인정빚을 지워줄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그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면서 확실하게 도와줄 묘책은 없을가?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은 어지럽기만 했다.

이튿날 아침밥을 설때린 경식 선생이 등산하러 가지 않고 서재로 들어가려는데 객실에서 "선생님 들창가를 지날 때마다..."하는 명쾌한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노래를 즐기는 안해가 비디오를 켜놓은 것이였다. 재직시절에 그렇게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던 노래를 듣던 경식 선생은 갑자기 자기의 무릎을 탁 쳤다.

"그럼 그렇지, 수레가 산 밑에 이르러도 길이 있기 마련이지. 그런데 내가 왜 진작 이런 간단한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을가? 나도 이젠 늙었나보다."

경식 선생은 서랍 속에 깊이 건사한 CD를 꺼내였다. 그것은 그가 정년퇴직하기 전에 제자인 한 젊은 수학교사가 30여시간을 들여 그의 기하강의 전과정을 록화편집하여 정년 퇴직할 때 기념으로 선물한 것이였다.

(이것이면 됐다. 영순이에게 큰 정신부담도 끼치지 않고 경애가 개학전에 기하공부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게 되였으니.)

경애한테 비디오가 있는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영순이가 적어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경식 선생은 대방이 경애임을 챙챙한 목소리를 듣고 알수 있었다.

 "경애냐? 나는 어제 만났던 유선생님이란다. 너희집에 혹시 비디오가 있느냐?"

"비디오는 없지만 어머니가 공부하는데 도움이 된다며 학생용 간이컴퓨터를 마련해줬습니다. 그건 왜 물으세요?"

"마침 잘됐구나. 너 지금 우리가 어제 만났던 장소에 나올 수 있겠느냐?"

"예!"

경식 선생은 경애의 확답을 듣고나서 유쾌한 기분으로 CD를 넣은 가방을 들고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을 나섰다.

아침해살이 찬연한 빛을 뿌린다. 밤새 내린 소낙비의 세례를 받은 가로수는 미역을 감은 듯 청신하고 인행도는 걸레질한 복도같이 말끔하다. 행인들의 발걸음도 유난히 가볍다.

5~6분을 걸으니 알곡시장이 점점 시야에 안겨온다. 이윽고 경애가 "선생님!” 하고 반겨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경애야! 천천히 걸어오려무나!"

경식 선생도 기쁨에 겨워 발걸음을 다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