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봄빛이 무르녹는 이 계절에
发布时间:25-05-13 08:23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수필

봄빛이 무르녹는 이 계절에

-김희자 선배님을 기리며

(심양) 서정순

2024년 12월 25일, 겨울치고 그날은 청명한 날이였다. 하늘은 꽤나 맑았고 태양도 비스듬히 빛을 내려주고 있었다. 무거운 표정들 앞에 환하게 맞아준 것은 꽃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그녀였다. 분명 그녀를 배웅하러 왔건만 구경 누가 누구를 배웅하는 것인지 일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일말의 번뇌도 없이 사진 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그녀는 선뜻 나와 말이라도 걸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녀와 다정하게 마주서서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녀와 내가 정녕 영영 함께 하지 못할 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석달 전 만났을 때 그녀는 주치의사한테 집에 돌아가 정리를 해야겠다며 일주일 청가를 맡고 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녀가 삶의 끝머리에서 하나 하나 정리를 하면서 어떤 심정이였을지 상상이 안된다. 그날 그녀는 우리를 만난다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왔다. 얼굴도 탱탱하고 목소리도 여전히 챙챙했다. 우리를 만나려고 아침부터 조카와 시누이가 달라붙어 화장을 해줬다며 그녀는 웃었다. 녀자 넷이 모여 평소처럼 수다를 떨며 반나절을 보냈다. 병치료 얘기도 하고 살아가는 얘기도 했다. 수필 송년회 때 녀자 셋이 찍은 사진을 보며 나도 안 아프면 함께 했을텐데, 요 옆자리가 내 자리였을텐데, 한복 색갈도 딱 어울리는데 하며 많이 울었다고 해서 핑 도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았다. 쉽게 만나고 헤여지는 우리의 일상이 지금 그녀한테는 그토록 간절한 소원임을 가슴 저리게 느꼈다. 

집까지 배웅해주겠다는 우리를 그녀는 한사코 거절했다. 혼자서도 잘 찾아가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떠나가는 그녀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자꾸 눈물이 나려 했다. 정말로 기적이라도 생겨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으면 했다. 그냥 그 자리에 있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선배를, 우리와 함께 수필이라는 길을 가고 있는 동행을 나는 정말로 잃고 싶지 않았다.

1년 전 쯤, 수필 모임을 하려고 할 때였다. 내가 된감기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그녀한테서 전화가 왔다. 준비할 일이 있으면 맡기라고 했다. 괜찮다고 했지만 그녀는 일이란 다같이 합심해야 한다면서 프랑카드 같은 것은 자기가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고 했다. 수필 모임 날, 일찌감치 자기 키만한 프랑카드를 보총처럼 메고 씩씩하게 걸어오던 그녀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제 겨우 1년이 좀 넘었는데, 통통 튀기라도 하듯 약동감 넘치던 그녀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2023년 8월 1일, 단동의 맑은 하늘 아래 우리와 함께 폭소하던 그녀는 또 어디로 갔단 말인가. 하루하루 다가오는 극심한 고통이, 호시탐탐 생을 노리는 무서운 어둠이 그녀를 어떻게 갈아먹고 있는지, 그녀한테 어떤 타격을 주고 있는지, 그 느낌을 겪어보지 않은 내가 어찌 알 수 있으랴만 그래도 나는 그녀가 우리들 곁에 오래오래 남아있었으면 했다. 

“참 너무 힘들어서 삶의 질이 안되는 생을 하루에도 몇번 포기할 생각을 하다가도 인간의 본능이 생의 한가닥 끈이라도 잡고 싶은 것인지 치료 받으면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드네요.”

그녀가 치료를 받으러 떠나간 후 나는 그녀한테 조금이라도 도움, 아니 위안이라고 주고 싶어 위챗을 열지만 대체 무슨 말로 그녀를 위로하며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망연하기만 했다. 무슨 일이나 맺고 끊듯 랭철한 리성을 가진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남의 일이듯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서샘, 그간 저를 알아봐줘서 고마웠고 함께 한 시간 너무 즐거웠어요. 제가 보고 싶은 얼굴들이 이 췬에서 수다떠는 걸 보는 게 저에게는 향수입니다. 제가 글을 발표 못하고 얼굴을 내밀지 못해도 저를 짤라버리지 마시고 이제부터 몇달동안 놔두라고 부탁합니다. 중국의과대학에서 9월 28일 저에게 췌장암말기 판결 내렸는데 10월 1일 한국 와서 오늘 서울대병원 진단결과는 좀 더 하네요. 중국땅은 밟지 못해도 수필췬 글이라도 볼 수 있을 때까지 볼 께요. 서샘두 건강 잘 챙기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췬이 수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를 빕니다.” “수필췬이 있어 나에게는 다행. 오늘 읽고 내일 잊더라도 읽을 때만은 행복하니까. … 내가 이 췬의 성원이 된 것만도 행운입니다.”

애초 수필분과 주임으로서 저조되여 있는 문학회의 글쓰기에 조금이나마 바람을 불어넣고 정년 퇴직도 했으니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글도 쓰고 함께 공유도 하면서 즐기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수필모임이지만 모임이 거듭될수록 나의 마음 한 구석에는 그 당위성에 대해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말 많은 세상이라 까딱 잘못하면 부질없는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메세지를 받고는 이런 마음을 품었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고 수필모임과 수필 멤버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녀의 마음에 큰 위로와 힘을 얻군 하였다. 크고 대단해서 소중한 것이 아니라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을 때 물건이든 사람이든 모임이든 소중해짐을 그녀를 통해 알게 되였다.

그녀는 자기로 인해 대방이 힘들어할 가봐 일부러 힘든 상황을 담담하게 표현하군 하였다. 힘든 항암치료를 하면서도 그녀의 메세지에는 항상 유머가 담겨있었고 문학을 향한 열망이 피여나고 있었다.

“항암 끝나고 집에 오면 두팔은 변기 끓어안고 입으로는 오물이 나가지만 머리에는 노벨문학상을 꿈꿉니다. ㅎㅎ”

“정말 좋은 수필 소재가 있는데 글을 쓰려고 컴 앞에 앉으면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눈이 사물거려서 타자를 할 수가 없네요. 좀 나으면 쓸가 합니다.”

좀 나으면 … 그랬다. 좀 나으면 함께 수필도 쓰고 함께 그림전시회도 다니고 ‘괴테’ 책방도 함께 가고 함께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 세상은 넓고 하려는 일은 많기도 하다. ‘항암치료 5일 입원, 2주 집에 있는데 한주는 사경을 헤매고 한주는 회복단계’, 25번의 항암치료를 받으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가. 생명은 각일각 사라지고 있지만 의식은 또렷한 그 무서운 형벌을 그녀는 어떻게 버텨왔을가.  

“서샘 수필을 읽으며 문득 친구 찾아가고 싶고 … 내가 하향했던 그곳의 사계절 벌판을 그리고 사람들을 떠올리는데 몇시간! 바다가 거니는 모습 상상하며 나도 친구들과 바다가 거닐던 추억에 몇시간 빠지다 나니 어제 오늘 다 너무 행복하고 기분이 힐링됩니다.  … “

“제백석(齐白石), 서비홍(徐悲鸿)의 그림 작품을 료녕전람관에서 전시한다는데 아직 속이 살아서 못가보는 게 속상하네요 …”

“만남을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오늘 떡국도 한그릇 비웠네요. …”

“잊지 않고 새해 축복 주셔서 넘 감격입니다. 현재 머리, 눈에까지 전이되여 언제까지 수필췬의 글을 뜯어볼 수 있을런지 …  수연 회원님들이 우쓱우쓱 커가는 것이 대견스럽고 부럽고 … 건강이 최고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서샘 항상 감사합니다!”

‘삶의 가치는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았는가로 결정된다.’ 오래 살았지만 짧게 산 사람이 있고 짧게 살았지만 길게 산 사람이 있다.  그녀는 삶이 품안에 있는 날까지 그 삶을 사랑하며 충실하게 살았다. 살기 위해 병마와 싸웠고 병마와 싸우면서도 세상을 사랑하고 주위를 사랑했고 주어진 생을 온전히 사랑했다. 그녀와 함께 했던 수연수필모임은 수필이 빛이 났던 시간들이였다. 잘 살았다. 나의 선배여, 나의 동행이여. 고마웠어요. 선배님.

“서샘, 단동행 가입으로 그후 기침 한번 안하니 넘 량심이 찔리네요. 실은 위해 친정 오빠 간암 위독 통보 받고 와서 간호중인데 그간 혼자 간호하던 막내 남동생이 넘 힘들었는지 페염으로 입원해서 아래 위층으로 … 죽을 맛이외다. 모든 게 정리되고 귀가하면 … 그래도 자기 전에 수필췬에 들어가 보는 것으로 하루 일과 마칩니다. 들어가 보고 싶은 게 수필췬입니다.”

수필췬이 그녀에게 한점의 희망을 줬다면 그것만으로 위로를 받는다. 살아있는 내가 그녀한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꽃 속에서 웃고 있는 그녀를 보내며 나는 선배 이제는 제발 아프지 마시고 저 세상에서 문학의 꽃밭을 거닐며 노벨문학상을 받으세요 하고 기도를 드렸다. 봄빛이 무르녹는 이 계절에 선배님, 꽃길 걷고 계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