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주추돌
发布时间:25-05-13 08:15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수필

주추돌

(목단강) 손봉금

“가장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어린왕자》의 유명한 대사다. 숨겨져 있는 사랑, 숨겨져 있는 마음은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 주추돌 역시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땅에 묻힌 주추돌처럼 오래 동안 묻어놓았던 일들이 떠오른다.

오랜만에 가진 형제들의 모임이다. 큰 오빠네 중국요리 집이 모임 장소다. 식탁에 모여앉은 우리는 삶에 지친 모습들을 서로 훔쳐본다. 안쓰러움이 묻은 얼굴에도 모두 웃음꽃이 피여있었다. 말이 정기모임이지만 일년에 고작 세번에서 네번 만난다. 만날 때마다 반가움은 형제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술잔을 기울이고 웃고 떠들면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만나면 빼놓을 수 없는 어릴 적 추억들이고 그리운 부모님들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술상의 분위기가 최고봉으로 흥분되였는데 갑자기 동네 친구 삼촌이 나타났다. 옆에 있는 룸에서 술을 마시다가 담배 피우러 밖으로 나가던 참에 우리를 보고 들어오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 하다가 친구 삼촌이 한마디 하셨다.

“너희들은 참 보기 좋다. 아버지가 이런 모습들을 보시면 얼마나 좋아하시겠니, 아버지가 주추돌처럼 묵묵히 너희들을 지켜주셨다” 고.

순간적으로 우리는 눈물을 감추려고 애썼지만 눈물을 흘렸다. 친구 삼촌이 맞는 말을 하셨다. 우리가 화목한 것이 다 부모님들의 덕분이다.   오랜 세월을 수많은 일들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살았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가정을 위하여, 자식들을 위하여 자신의 령혼까지 다하신 아버지다. 아버지는 우리들을 키우면서 힘든 날들을 주추돌처럼 끄떡없이 지키셨다.

어릴 때 식구는 많은데 집이 작았다. 좋은 집을 지을 형편은 되지 않고 집 맞은편에 작은 집을 짓기로 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동네 아저씨들과 굴리는 것도 힘든 정도의 큰 돌을 실어왔다. 돌은 까만색으로 반들반들 했고 평평하니 나와 동생이 놀기는 딱 좋았다. 말이 집이지 창고나 다름없었지만 주추돌은 아주 좋았다.

아버지는 농사일을 하면서 시간만 나면 집을 짓느라 바쁘셨다. 아버지는 일하시느라 바쁘시면 우리는 노느라 바빴다. 나와 동생은 학교 가는 시간 외에는 앵두 밭에서 떠나지 않았다. 입가에 빨간 앵두 물이 들 때까지 먹고 놀다가 아버지가 일하는데 가서 제비마냥 참견했다. 아버지는 삽으로 흙을 파고 또 팠다. 나중에 제법 크고 평평한 돌을 구덩이에 넣는다고 했다. 나는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앵무새 마냥 아버지한테 다가가며 물었다. 아버지는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면서 내가 말 걸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삽을 땅에 놓았다. 축 처진 바지 주머니에서 담배쌈지를 꺼내들고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이 돌은 주추돌이란다. 이런 큰 돌이 여기뿐만 아니라 네 모퉁이에 다 넣어야 한다. 집을 든든하게 지으려면 이 주추돌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어야 한다.” 고 말해 주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아버지는 묻혀있는 주추돌이고 우리는 아버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건물이 되였을 것이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만감이 교차되는 시간이 되였다.

몸은 차에 실려 가고 있지만 마음은 어린 시절에 살던 집에 머물렀다.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감동이 밀려왔다. 가난과 삶에 지쳐 살다가 가신 아버지다. 창고나 다름없는 집을 짓고 기분이 좋아하시던 아버지다. 아버지의 주추돌이 떠올라서 흐르는 눈물은 차안의 슬픈 노래가 되였다. 나 역시 이제 한 남자의 안해이고 딸애의 엄마이다. 딸한테 좋은 주추돌 역할을 했는가? 자문해 보았다.

아버지는 여섯 아이의 아버지고 나는 딸 하나만 키운 엄마이다. 겨우 여섯 등분한 한몫의 주추돌 크기 밖에 되지 않는다. 아버지가 궁궐이나 사찰 같은 주추돌이 되였다면 나는 겨우 초가삼간의 주추돌이였다. 살아가면서 모든 일에 아이한테는 아버지처럼 주추돌 역할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얼마 전에도 딸내미를 앞에 두고 시어머니한테 무례한 태도로 말을 던진 적이 있다. 가벼운 나의 언행이 딸한테는 흔들리는 건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버지는 아이 여섯 중 셋은 양자임에도 큰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살았다. 아버지는 삶에 지치면 한 잔의 술로 달래고 가슴에 쌓인 아픔은 한 모금의 담배연기로 내뿜고 살면서 우리에게는 든든한 주추돌이 되여주셨다.

주추돌은 반듯하고 평평하면서 어느 정도 크기도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야 한다. 아버지는 삶에서 주추돌처럼 도량이 넓고 세상이 짓누르는 모든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면서 가정을 위하여 자신을 불태웠다. 오늘도 그리움 속에서 아버지가 지은 집을 그려본다. 그 큼지막한 주추돌을 되새겨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