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세월(외 1편)
(봉성) 장문철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잔뜩 찌푸렸다. 먹장구름이 당장이라도 밀려와 비가 억수로 쏟아질 것만 같았다. 천기예보에선 비가 앞으로 며칠 련속 내릴 거라고 했다.
부랴부랴 아침시장을 향했다. 굵은 비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조급해났다. 오늘은 이것저것 좀 많이 사기로 했다.
강냉이도 사고 감자, 고추, 강남콩, 셀러리, 상추도 샀다. 내가 한창 장을 보는데 감자를 파는 로인이 감자주머니를 들고 헐레벌떡 달려와서 돈만 내고 그냥 두고 갔다며 건네줬다. 조금 후에는 또 고추를 파는 아줌마가 고추를 들고와서 돈만 내고 그냥 두고 갔다며 주고 갔다.
나는 느닷없는 일에 어안이 벙벙했다. 곰이 옥수수 따는 장면이 생각나면서 머리가 뗑해나고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서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하루 아침에 같은 실수를 두번하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니였다. 평소에 이 방에서 저 방에 가 왜 왔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한참을 망설이군 했다. 갑자기 동료나 지인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난처할 때도 가끔 있었다. 안경을 쓰고 안경을 찾을 때도 있었고 외출시 문을 걸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다시 올라와 확인하길 한두번이 아니였다. 지금은 밤에 꿈을 꾸고도 무슨 꿈을 꾸었던지 깨여나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는 돌아오는 내내 왜 이러지를 여러번 반복했다. 내가 왜 이러지? 알츠하이머? 그러면 안되는데!
나는 내가 너무 편안해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은퇴를 하고부터는 생활에 절제나 규칙이 없었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놀고 가고 싶으면 가고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았다. 하늘에 둥둥 떠가는 구름처럼 모든것이 자유자재였다.
동년배들에게 자문을 했더니 자기들도 자주 격는 일인데 늙으면서 생기는 로화현상으로서 치매는 아니라는 것이였다. 한 동료는 나에게 치매를 체크하는 몇가지 방법을 보내왔다. 요구에 따라 체크하고 합격하면 근심 붙들어매란다.
모든 지표가 합격이였다. 동료는 90까지는 문제없다며 진정환을 먹이였다. 다른 한 동료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인슈타인이 기차를 탔을 때였다. 렬차장이 차표를 검사할 때 아인슈타인은 갑자기 차표를 찾을 수 없어 매우 당황했다. 이에 렬차장은 “교수님 찾지 마세요. 저는 당신이 누군지 압니다”하고는 다른 손님들의 차표를 검사했다. 렬차장이 온 차칸의 차표를 다 검사했을 때까지 아인슈타인은 계속 차표를 찾으며 망설이였다. 렬차장이 다가가서 말했다.
“교수님, 정말 안찾아도 됩니다. 저는 당신이 유명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이라는 것을 알아봤습니다. 저는 당신이 표를 샀다는 것을 믿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대답은 상상 밖이였다.
“저도 제가 누군지 알지요. 하지만 저는 반드시 차표를 찾아야 합니다. 어디에서 내려얄지를 잊었으니까요.”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 했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신체의 모든 면에서 로화가 일어난다는 말이다. 뇌의 퇴화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서 제일 총명한 사람이 이럴진데 나같이 우둔한 사람이야 더 말해 뭐하랴. 그렇고 보면 간혹 이것 저것 잊어버리는 것은 로년의 정상 현상이라 하겠다.
다산 정약용선생은 목민심서에서 "정신이 깜박거리는 것은 살아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고 지나온 세월을 다 기억하면 아마도 머리가 핑 하고 돌아버릴 것이다"고 했다.
열매가 결실을 맺는 가을이 깊어간다. 황혼의 저녁노을도 가을처럼 익어간다. 단풍이 떨어져 추풍락엽인가 했더니 흘러가는 세월이였다.
신자유(信者有)
추석이 닥쳐옵니다. 꿈에 아버지 어머니가 보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무덤은 강입니다. 청명이나 추석에는 강가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만납니다. 조용히 명복을 빌고 나면 꽉 막혔던 가슴이 쭉 펴집니다.
의형제가 있었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 나를 형이라고 부릅니다. 동생은 언녕 도시로 이사를 했습니다. 해마다 청명이면 친아버지의 산소를 보러 옵니다. 저녁이면 산소를 보는 동생을 동무해 함께 가곤 했습니다.
동생은 우로 누나 한분이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산소를 보러 오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동생은 청명에 아버지를 보러 오지 않으면 머리가 빠개지는 것처럼 아프다고 했습니다.
딱히 출처는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옛날에 도랑을 건너는 사람이 옆에 있는 망두석을 뽑아서 다리를 놓고 건넜습니다. 후에 한 선비가 지나가다 넘어진 망두석을 보고는 다시 제자리에 옮겨 놓고 나무아미타불을 외웠습니다.
문득 망두석이 위엄충천한 소리로 호통쳤습니다.
너에게 천벌을 내릴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