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광서의 산수를 찾아
(광동) 김금단
딸애마저 곁을 떠나다보니 시간만 있으면 언제 어디든지 자유자재로 출발할 수 있게 되였다. 계림의 산수는 천하제일이라는 말이 있다. 광서 계림의 지각변동으로 해저가 돌출되여 형성된 수많은 봉우리와 기암절벽의 카르스트 지형은 늘 마음 속 선망의 대상이였다. 2박3일 일정으로 단오휴무를 리용하여 광서의 계림 등 산수를 유람하기로 하였다.
최근 두달동안 광동은 나흘만 비가 안 내리고 그외에는 참으로 끈질기게 끊임없이 비가 내렸다. 때로는 성난 사자마냥 대야로 퍼붓는 듯이 내리기도 하고 때로는 수줍은 소녀마냥 바람에 빗발을 날리면서 잔잔히 내리기도 했다. 평소 같으면 비가 꽤 많이 오래동안 오면 괜히 조금은 우울해질 것 같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광동의 산수에서는 볼 수 없는 광서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매력의 산수를 찾아 출발한다고 생각하니 고무풍선마냥 마음은 둥둥 떴다. 수많은 령롱한 불빛이 반짝이는 이쁜 터널들을 지나 이 고속도로에서 저 고속도로에로 차선을 바꾸며 불산시 삼수휴계소를 걸쳐 출발해서 6시간 달렸을 즈음 수많은 산봉우리들과 험준한 기암절벽들이 한폭의 산수화같은 절경들로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끝없이 기복을 이루며 천차만별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었다. 계속해서 앞으로 달리니 한무리씩 무리를 이룬 산들이 있는가 하면 동떨어져 있는 산들도 있었다. 사람처럼 좋을 때는 떨어지지 못해서 함께 있다가도 사이 안 좋을 때는 서로 떨어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어서 로인같기도 하고 락타모양 같기도 한 산들이 나타나는데 련이어서 자세히 관찰하여 보면 마치 사람이 하늘을 향해 누워있는 것처럼 코와 눈과 입 형태가 나타나기도 한다.
“와, 멋있다! 아름답다! ” 저도 모르게 입에서 감탄사가 련발된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언어들을 광서의 산수에 사용해도 모자랄 것만 같았다. 영원히 달려도 달리고 싶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너무나도 현혹적이여서 장거리의 피로도 말끔히 가셔주고 있었다.
처음으로 발길을 들리게 된 곳은 계림과 200키로 떨어진 1300년의 력사가 담긴 전형적인 카르스트 지형인 황요마을이다. 계화향을 넣은 과자며 이름모를 마른 약재들이며 손으로 빚은 광주리같은 수공예품이며 독특한 우산이며 특산품들이 거리에서 진열되여 있었고 건물들은 대부분이 높지 않은 낡고 오래된 돌과 흙으로 빚은 집이였다. 황요마을의 흥망성쇄의 력사를 목격한 850년생의 하늘에서 룡의 발톱처럼 늘어진 가지들은 뿌리와 덩쿨이 얽혀서 시들어버렸지만 줄기는 여전히 왕성한 생명력의 용나무를 바라보면서 나무에 비하면 사람이 이 세상에 태여나서 향수할 수 있는 시간이란 너무나도 짧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문에 위치한 300여년의 부부용나무는 멀리서 보면 한그루의 나무로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자세히 바라보면 한쌍의 아름다운 련인마냥 서로 행복하게 꼭 끌어안고 있어서 함께 떨어지지 않는 그 영원한 사랑에 부러움을 금치 못하고 흠모의 눈길로 바라보게 하였다.
“먼곳의 집” 민박집을 잠자리로 정했다. 내부는 돌담으로 간소하게 장식되고 천정에는 기와를 얹은 아주 오래된 풍격이였는데 2층 숙소에서 문을 열면 여러개의 붉은 등이 어둠을 빛내면서 야간의 정취를 더하고 있었고 잔잔히 내리는 비소리만이 밤의 고요를 깨뜨리고 있었다. 분주한 도심의 차소리와 때로는 고단하기도, 힘들기도, 슬프기도, 외롭기도, 행복하기도 한 삶의 현장을 멀리 떠나 오랜만에 황요마을에서 오롯이 순수한 자연을 향수하게 되였다. 세상과는 담을 쌓은 무릉도원에서의 너무나도 고즈넉한 시간이여서인지 호텔에서 잠자리가 익숙하지 않으면 잠을 잘 자지 못하던 과거를 깨뜨리고 10시간이란 긴 시간동안 꼬박 꿀잠을 자게 될 줄은 너무나도 뜻밖이였다. 이른 아침 눈을 떴을 때는 온몸에 힘이 나는 느낌이였다.
양삭에 위치한 리강으로 출발하려고 비옷이며 빵이며 가방에 넣었다. 알릴듯 말듯 희미하고 몽롱한 운무 속에 기암절벽의 수많은 산들이 다가오면서 그 속을 달리는 나도 순수한 자연의 화폭이 되여가는 느낌이다. “리강의 물은 정말로 조용하다. 너무 조용해서 움직이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리강의 물은 정말로 맑다. 맑아서 물밑 모래까지 보인다. 리강의 물은 정말로 푸르다. 푸르러서 마치 한쪽의 비취와 같다”. 딸애의 소학교 교재에 실린 리강에 관한 묘사이다. 그 묘사가 진짜인지는 눈으로 경험하고 판단이 필요하였다. 오래전 2박3일 일정으로 절강성 항주, 령은사, 천도호를 다녀온 적이 있다. 기대가 너무 높았던 탓인지 항주 서호를 마주하는 순간 결코 내가 책에서만 접하던 그런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여서 실망을 느낀 적이 있다. 차 두대가 다니기 힘든, 한켠은 벼랑인 좁디좁은 험한 산 속을 달리면서 안전때문에 조금은 걱정이 되였지만 다행이도 무사히 리강에 도착하였다. 간밤의 큰비때문인지 생각했던 바와 달리 흐린 물이 리강에서 출렁이면서 강가를 거의 넘쳐 흐르고 있었다.
리강의 도보길을 두발로 천천히 걷는 여유로움으로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기로 하였다. 울울창창한 참대들이 강가를 향해 길게 가지를 뻗고 있다. 비온 뒤 음이온으로 가득찬 공기는 상큼하다. 나무잎들이 옅은 향기를 풍기고 있고 이따금 재잘거리는 새소리가 울려퍼진다. 대나무 뗏목, 유람선들이 리강을 달리며 사람들에게 리강에서만의 행복한 경험을 향수하게 하고 있다. 걸어도 걸어도 힘든 줄을 모르고 또 다른 놀라움, 감탄의 련속인 이런 순간, 삶에 과연 이런 리강만의 경험이 몇번 있을까. 양삭의 산수는 계림의 제일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리해가 간다.
구마화산의 멋진 풍경을 제대로 보려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서 걸어야 하였다. 구마화산은 강가에 린접한 산으로 거대한 절벽이 수직으로 물가에 서있는데 좁은 간격으로 붙어 있는 바위가 벽화처럼 보이는데 9마리의 말이 그려져있다고 하여 구마화산이라고 한다. 7마리 말을 찾으면 2등이고 9마리 찾으면 장원급제라고 한다. 조용히 서 있거나 고개를 숙이고 물을 마시거나 머리를 쳐들고 울부짖거나 발굽을 흔들며 달리는 말들이 있다고 하는데 너도나도 구마화산의 말이 몇마리일가 세여본다. 아무리 눈을 비비면서 찾고 찾아도 그림에는 숙맥인 내 눈에 들어오는 말은 하나도 없다. 유명한 말 그림의 대가인 서비홍은 8마리를 찾아냈다고 하니 답안을 보지 않으면 아홉마리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을런지 의문이다.
귀부신공의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서 힘든 줄도 모르고 걷었다. 몽롱하기만 하던 대자연이 어느 순간 안개가 걷히고 하늘이 물감을 풀어놓은듯 푸르르고 뭉게뭉게 흰구름이 정처없이 흘러간다. 구름을 바라보면서 우리네 인생도 구름처럼 왔다가 구름처럼 자취없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때문에 앞길이 막혀서 에둘러서 걸어서 인민페 20원의 배경지인 황포도영에 도착했다. 황포도영의 아름다움은 물에 비낀 산의 아름다움이 최고라고 하지만 리강이 흐려서 물에 비낀 아름다움을 볼 수 없어서 못내 아쉬웠다. 원하는 바를 다 이루었더라면 다시는 찾지 않을지도 모르는 리강을 어쩌면 이루지 못한 그 아쉬움때문에 다음행을 계획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속에 다소 아쉬움이 있어 그립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일들이 인생 다반사라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마음을 비우니 미리 휴대했던 20원을 꺼내들고 산을 배경으로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음에 행복감을 느낀다. 땀을 흘리면서 천천히 걸은 덕분에 말 타고 꽃구경식이 아닌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계림 양삭 리강의 매력을 피부로 경험하게 되였다.
내내 흥분과 감탄으로 들끓었던 리강을 떠나 동서양문화가 융합된 1000여년의 력사를 갖고 있는 양삭에서 가장 오래되고 제일 번화한 거리인 서가로 향했다. 서가에 도착하여 황요마을의 원시적인 민박이 아닌 현대식이라고 할 수 있는 서가의 한 호텔에 짐을 풀고 거리로 향했다. 800메터의 거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발길이 가는대로 마음 내키는대로 걸어서 다리 량켠에 도착했다. 사람들의 소망과 꿈을 기록한 수많은 빠알간 소원패쪽들이 바람에 나붓기며 그 누군가의 꿈을 세상에 알려주고 있다. 자연에 띄운 건강을 기도하는 꿈, 취직을 기도하는 꿈, 장사가 잘 되기를 기도하는 꿈, 대학에 붙기를 기도하는 꿈 등의 많고 많은 희망들이 누군가의 삶의 저력으로 될 것이다.
조금 앞으로 더 나아가니 화가들이 그림을 그려주고 있었다. 내 얼굴을 익숙하지 않는 사람에게 내준다는 생각도 못한채 주저없이 화가를 향해 마주앉았다. 화가의 눈길이 나를 향하자 조금은 어색했지만 3분도 안되여 흑백으로 된 그림이 나왔고 거기에 칼라를 더하여 긴 생머리에 안경을 건 칼라 그림을 양삭에서의 기념으로 남겼다.
금방 사진을 손에 받아쥐였는데 비가 대야로 퍼붓는듯이 내리기 시작한다. 가게안으로 피해서 서가에서의 기념으로 이쁜 긴 머리 댕기를 하나 샀다. 이쁜 댕기로 일하면 계림에서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삶의 촉매제가 될 것 같기도 하다. 비가 덜해지자 우산을 들고 비내리는 밤길을 한가히 걸으며 이곳 저곳을 바라보며 여유를 만끽한다. 파란만장 력사의 흔적이 있는 오래된 거리와 골목이라는 인상과는 달리 카페, 커피솝, 술집, 음식점들이 줄지어있다. 너무 늦으면 무리할 것 같아 일찍 호텔로 돌아왔다.
려행길에서 손에 잡은 삶의 모든 끈을 놓아서일가 아니면 소음이 없는 양삭의 호텔이 어둠만큼 정적을 지켜서일가? 밤잠을 깨지 않고 달콤하게 잘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
3일째인 마지막 날은 전동차를 타고 30키로 돌면서 십리화랑을 비롯한 계림의 유명한 풍경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전동차가 손에 익숙하지 않아 조금은 겁이 났지만 브레이크를 잘 공제하고 속도를 갑자기 빨리하지 않으면 문제가 안될 것 같았다. 처음에는 조금은 긴장했다. 손잡이를 꽉 잡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조금 있으니 천천히 적응이 된다. 그제야 주위의 풍경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거리는 전동차 대오들로 메우고 있다.
리강의 제일 큰 지류인 우룡하에 도착해 잠간 내렸다. 원래는 우룡하에서 표류 계획이였는데 전날 밤 비가 많이 와서 표류를 할 수 없었다.
도끼로 자른듯한 푸르름을 입고 한 자리만을 고집하며 독특한 자태를 자랑하는 수많은 아름다운 산들을 지나서 월량산에 도착했다. 산에 달 모양의 빈 공간이 있어 월량산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월량산을 배경으로 달 모양을 두손으로 받쳐들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방을 쭈욱 둘러보아도 아름다운 사람을 취하도록 만드는 카르스트 산들이다. 카르스트 산들이 너무 좋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이고 기쁨이고 도취이다. 영원히 눈에 간직하고 싶은 계림의 산! 산! 산! 소망하던 산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만끽하게 되여 삶에서 이런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은 간단히 계림의 특산인 계림쌀국수를 맛보기로 하였다. 주문해서 삶은 것이 아니고 이미 삶아놓아서 매끌매끌한 맛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영업하고 있다보니 맛보다 돈벌이가 더 중요했던가 보다.
점심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천고정 풍경구로 향했다. 천고정이라는 연출은 선진적인 소리, 빛, 전기 등 첨단기술을 리용하여 립체적인 공간에서 시공을 넘나들며 리강 산수하의 지난 문화를 재현하는 연출이였는데 미처 시간이 안되여 볼 수 없었다. 천고정 입구의 “나에게 하루를 주면 당신에게 천년을 돌려드리겠습니다”라는 글귀가 마음에 확 닿으면서 지난 시간들이 필름마냥 스쳐지나간다. 누구나 원하는 것은 하루라는 시간만으로 천년이라는 시간동안 랑만적인 사랑을 받고 싶어하지만 과연 하루라는 시간만으로 천년을 바꿔줄 사람이, 사랑이 이 세상에 얼마 있을까.
오후 일찍 출발해서 돌아와야 했고 출발전 저녁을 해결해야 하였다. 계림의 특산인 죽통닭과 맥주물고기와 우렁이 등 메뉴들을 택했다. 참대통에 닭고기를 썰어 넣고 입구를 봉하고 불에서 구워서 만든 죽통닭은 불에 그을은 냄새가 났지만 그래도 농가에서 자란 닭이라 닭고기가 꽤 고소하고 맛있었다. 맥주물고기는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다. 우렁이는 안의 우렁이를 빼고 양념을 넣고 간을 맞춘 돼지고기였는데 맛이 괜찮았다. 농가의 음식은 비교적 입에 맞았고 가격도 괜찮았다. 계림의 소비가 광동의 소비보다 많이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도로가 막혀 생각보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 많이 늦어져 새벽녘에야 겨우 집에 도착했다.
20원 배경지인 계림에 다녀왔으니 전에 다녀온 인민폐 1원의 배경지인 서호와 100원의 배경지인 인민대회당까지 합하면 세개의 인민폐 배경지를 다녀온 셈이다. 다음 목적지는 5원의 배경지인 태산일가, 아니면 50원짜리 배경지인 부다라궁일가, 아니면 홍콩돈의 어느 배경지일까 아직은 미정이다.
아름다운 카르스트 지형의 뛰어난 풍경들과 력사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눈을 부시게 하고 마음을 현혹시킨 광서 산수의 려행은 결코 헛되지 않은 자연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으로 마음을 정화시키는 시간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