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광인 련재작ㅣ중국혁명 속 우리 겨레 혁명가들(남만편) -8
发布时间:22-06-14 03:48  发布人:崔秀香    关键词:   

동북인민혁명군 1군 1사 사장 리홍광 - 8

"아-" 리부평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장교놈이 군도로 만삭이 된 박퇀장 안해의 배를 쿡 찌르더니 또 불 속에 밀어넣었다. 악착한 왜놈장교는 아직도 선지피가 뚝뚝 떨어지는 군도를 들고 리부평에게로 돌아섰다. 리부평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눈에서는 강의한 빛이 흘렀다.
"내가 말하마. 나를 따라 오너라!"
"요시요시!"
왜놈장교는 너털웃음을 치면서 리부평의 뒤를 따랐다. 불무지를 지날 때 리부평은 번개같이 돌따서서 바싹 뒤따르는 왜놈장교놈을 덥석 끌어안고 불무지 속으로 뛰여들었다.
"앗!" 소리와 함께 장교놈은 불속에 처박히였다. 타오르던 토막나무들이 와그르르 넘어지며 왜놈장교와 리부평의 우에 허물어져내렸다. 의외의 사태였다. 어정쩡해있던 놈들이 저들 장교를 끌어냈을 땐 이미 늦었다. 새까맣게 탄 왜놈장교는 죽어서도 희생된 리부평의 두손에 모가지가 쥐여져있었다.
바로 이 때 밀영주위에 총소리, 수류탄 소리가 요란하다. 발자국을 메꾸며 맞은켠 산등성이까지 이르렀던 영숙이는 한눈에 리홍광 사장이 거느린 주력부대란 것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압록강을 건너 동흥성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근거지로 돌아오는 길이였다. 혁명군의 불의습격에 적들은 무리로 쓰러졌다. 영숙이도 놈들에게 복수의 명중탄을 퍼부었다. 불과 20분도 못되여 전투는 혁명군의 승리로 끝났다. 100여명 토벌대놈들이 모조리 전멸되였다.
후속부대 련락원이였던 태술이와 밀영의 녀대원 영숙이는 부대장병들과 함께 리부평의 시체 앞에서 비통하게 흐느꼈다. 리홍광의 근엄한 얼굴에도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그가 모자를 천천히 벗자 제1사 전체 전사들도 리사장을 따라 천천히 모자를 벗었다.
"동지들, 오늘 우리는 인민혁명군의 영웅어머니이신 리부평동지를 잃었습니다. 리부평동지는 우리 조선족, 아니 중화민족의 훌륭한 어머니이십니다. 우리는 꼭 어머님의 원쑤들을 모조리 소멸하고야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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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홍광 사장의 비장하고 힘있는 말소리는 마디마디가 우뢰가 되여 태고연한 장백산 밀림 상공에 메아리쳐갔다. 때는 1934년도가 며칠 안남은 어느날 아침이다. 희생될 때 리부평은 50대의 나이였고 우리 부대와 리홍광을 믿고 따르는 밀영의 책임자요 항일의 영웅어머니였다.
그럼 영웅어머니 리부평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릴 때 리홍광이 소속 부대를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넌 조선땅 하성읍습격전, 동흥진진공전투 등은 어떻게 벌어졌을가?
1934년 11월,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가 사를 넘어 2개 사를 가진 제1군으로 재편성된 뒤 리홍광은 어떻게 하면 우리 혁명군의 영향을 압록강을 넘어 조선땅에까지 널리 떨칠가를 골몰하였다. 마침 기회가 왔다. 압록강 넘어 평안북도 후창군 하성읍 군비창고를 지키던 수비부대가 항일군토벌로 동북으로 떠나고 한개 중대가 남아 지키고 있다는 군사정보가 들어왔다. 리홍광은 양정우와 토의하고 하성읍습격전을 펼치기로 하였다.
이 해 12월의 어느날 리홍광은 100여명의 기병부대를 이끌고 몽강 등지의 밀영을 떠나 압록강을 건너 일거에 조선의 하성읍 진공전을 펼쳤다(《동북항일련군 제1군》 군사를 비롯한 중문으로 된 여러 자료들에서는 모두 罗山镇으로 되여있으나 조선의 행정구역은 면과 읍으로 되여있는 데다가 라산진이라고 보이지 않는다). 아군은 승리의 기세로 일제놈들의 군비창고를 헤치고 일본인과 그의 주구들이 경영하는 상점들을 기습하여 무기, 입쌀, 통조림, 사탕가루, 소금, 천 등 많은 전리품을 얻어냈다.
《동북항일련군 제1군》 군사에 따르면 이날 리홍광부대는 조선사람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고, 10여명 조선청년들이 아군에 가입하였다. 리홍광부대는 또 조선사람들에게 중조 인민들이 어깨곁고 싸워 일본침략자를 몰아내야 한다는 항일선전에 열을 올리였다. 적들의 후원병이 다달았을 때는 아군이 이미 압록강을 다시 건너 멀리 사라진 뒤였다. 어떤 자료에서는 이날 리홍광이 이끄는 부대가 적 100여명을 소멸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믿기가 어렵다.
새해 년초가 다가왔다.
리홍광은 다시 200여명 부대를 령솔하여 평안북도 후창군 동흥면 진공전투를 벌이였다. 동흥면에 일제놈들이 여러개 대문을 가진 큰성을 구축하였기에 동흥면 진공전투를 흔히 동흥성전투라고 한다. 동흥면은 평안북도 후창군의 동쪽에서 흥하는 고장이라 하여 동흥(东兴)이라는 이름을 가지였지만 일제놈들이 이 고장에 국방방어시설을 견고히 한 데서 이른바 '금성철벽'이라는 군사요충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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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이 동흥성진공전투를 가진 날은 1935년 2월 13일 새날을 잡으면서이다. 이날 아군은 리홍광의 친솔 밑에 지혜롭게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섰고, 동흥성을 파죽지세로 들이치면서 12명의 일본주구를 생포하고 많은 군수물자를 로획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리홍광의 바람대로 동흥성진공전투는 일본침략자들을 놀래면서 조선각지에 파다히 퍼지였다.
관련 연구자료에 따르면 1935년 3월 20일자 《대동보(大同报)》는 <동흥을 습격한 녀비적은 리홍광이라는 자>라면서 리홍광을 18세의 남장미인으로 밝히고 있다. 18세의 남장미인설은 그 시절 서울의 《조선일보》에도 그대로 실리고 있는데, 동흥성전투 관련 기사들은 1935년초이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차고넘친다.
먼저, 1935년 2월 14일자 《동아일보》 제2면 기사-<나팔불며월경 장백현으로 향해>에서 일부를 원문 그대로 인용하여 보기로 하자.
"13일 오전령시반경에 동흥읍내를습내한 홍군은 동북인민혁명군으로서 군사령이하 약2백명이 모다장총과권총급 신식기관총 두대를 휴대하고 3대에 분하야 동흥성의 동쪽과 서쪽과 나마쪽의 세문으로 읍내를 유유하게 침입하야 동흥경찰서를 중심으로 읍내 전통을 에워싸고 습래한것이라고 한다…홍군은 조신인민가에 방화하고 붉은기를휘둘으며 맹열히 사격하야 두시간여의시가전이 게속 되엇다…새벽세시가지나서 홍군은 나팔을 불어 신호를울리어 압록강대안장백현으로 향하야퇴각을 개시하엿다."
"이와 같이 이 2백명이라는 다수의홍군이 조선에 월경침입하야 경찰서를 습격한일은 아직까지없든일로서 습격당한 동흥읍은 약5백호에 2천5백인이 거주하는평북최북단의 경찰서와 학교와우편국등의 관공서가 잇는압록강강안에서 약3정가량되는 곳이라 한다."
《동아일보》에 실린 이날의 기사는 리홍광이 령솔한 1사부대의 동흥성공격전투의 시간과 전투과정, 퇴각 등을 개략적으로 잘 알려주고 있다. 더구나 동흥성전투를 가진 이튿날 서울의 신문에 실렸다는 데서 믿음성이 있다고 보아진다. 일일이 언급하지 않지만 이 기사 뿐 아니라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통한 동흥성전투 관련 기사들이 수십편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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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리홍광이 <18세남장미인>이라는 기사를 보기로 하자. 이 기사는 1935년 2월 23일자 《조선일보》 제2면 기사-<공군두목리홍광은 18세남장미인>으로서 관련 내용을 원문 그대로 인용하여 보자.
"지난십삼일새벽에평북동흥읍을습격하야경관대와시가전을감행한리홍광일파이백명공산군사건에대하야는…리홍광은 금년에 겨우십팔세가되는 조선인 소녀로서 일즉간도에 출생하여 가지고 어려서 부터공산군에 가담하야 작년봄이래부하 륙백여명을 거느리는 부대의두목으로 공산군부대네에서는 '리사령'이라하면 모르는 사람이어스리만치 일홈이놉흔 미인두목이다. 그가 조선내를습격할 게책은발서부터 하고잇서 작년가을에는 남장하고 로동자로서동흥을내의동흥교의 가설공사에 인부로동을한일이 잇섯다는데 그때에동흥읍의 지리정세와경비상태의 조사는물로 시내에사는부자의 재산까지 세밀히조사하여가지고근거지로건너가서항상부하를 밀파하야 조선대안의정세를 정찰하여왓섯다 그러고그들이 이번동흥습격게획을하기는 금년에들어 발서부터 게획하고잇서 동흥하류지방을 습격한다고 류언비어를 일부러교묘히 선전식히여경관측으로 하여금 하류지방만을철통가티 경케하야 동흥일대의경비를 박약케하는동시에 십이일에 습격하려든것을 공산군중의 천문학자의 말에의하야 특히십삼일을택하엿섯다한다."
이어 기사는 지금껏 리홍광연구학자들도 전혀 모르는 내용을 밝히여 리홍광 관련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내용의 하나는 "습격하여올때에는 공산군의 대부분이 조선인이니만치 전부 조선옷에 총을메이고 세대로나노여 시내에침입하야 발서부터협박장을 자조보내여 주목하여오든 동흥제일의 재산가요재목상인장영록의집을습격하고불을찔으고 한부대는 경찰서문압해긔관총을놋코 발사하는등 작전게획이 정연하엿"다이다.
다음 하나는, "그들은 조선에 드러올 때에는 조선옷을 입고왔다가 시내에서 략탈을 하여서는 양복을 입은 신사가 티변장하고 대안으로 건너가다가 만주국 군대와 충돌하였으나 만주국 군대는 이에 대항치 못하고 퇴각하는 등 그들의 실력은 상당한 바가 있었다 한다."
이 두 인용문으로 보면 리홍광이 이끄는 부대는 압록강을 건너설 때 모두 조선옷을 입었고 전체 부대가 3개 대로 나뉘여졌고, 일본인과 일제주구들 상점 등 기습도 사전의 정찰에 따라 동흥제일의 재산가 장영록 등을 목표로 했고, 아군의 실력이 상당하여 압록강을 넘어온 후 맞다든 위만군부대는 감히 대항도 못하고 퇴각하였다고 너무도 잘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