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광인 련재작ㅣ중국혁명 속 우리 겨레 혁명가들(남만편) -7
发布时间:22-06-14 03:47  发布人:崔秀香    关键词:   

동북인민혁명군 1군 1사 사장 리홍광 - 7

때는 이 해 3월경이라 양정우, 리홍광이 이끄는 제1군 독립사 부대는 몽강의 나얼홍 밀림 속에서 휴식정돈하였다. 이 밀림 속에서 리홍광은 반석에서 전이한 항일가족들이 몽강의 수하밀영에 있고 밀영책임자가 리부평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 리홍광은 양정우와 상의하고 수하밀영에 가서 항일가족들을 찾았다. 그들 속에는 리부평도 있었다.

리홍광은 영웅어머니 리부평을 만난 것이 친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기뻤다.

"시간이 없어서 오늘에야 찾아뵙습니다."

"뭘, 리대장동지를 만나니 아들 순일이를 만나보는 것 같군요."

그들 사이 화제는 홍순일한테로 돌았다.

1933년 10월 우리 독립사 주력부대의 남하엄호과업을 완수한 후 홍순일은 소속 후속부대와 함께 주력부대를 찾아 몽강, 화전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후속부대가 화전의 동쪽 송화강변에 이르렀을 때 불현듯 2,000여명의 적토벌대와 조우하게 되였다. 홍순일은 20여명의 전사들을 거느리고 후속부대의 철거를 엄호하였다. 그들 20여명은 절대적으로 우세한 적토벌대와 밤낮하루를 꼬박 싸우며 적 수십명을 소멸하였으나 나중에 탄알이 다 떨어져 모두 장렬히 희생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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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부평으로 말하면 둘째의 희생, 생각하면 하늘도 무심하였다. 일년 남짓한 사이에 리부평은 남편을 잃고 또 두 아들을 일제놈들과의 싸움터에서 잃었다. 셋째마저도 신변에 없다 보니 친인 넷을 잃은 셈이였다. 그러나 리부평은 이 아픔을 속으로 묵새길 뿐 울고불고 한탄하지 않았다.

"어머님,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혁명군의 우리 전사들은 모두 어머님의 아들입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리부평을 위로하는 리홍광이였다.

"고마와요. 저의 걱정은 마십시오. 저도 어떻게 싸워야 함을 잘 알아요."

"어머님은 우리 혁명군의 훌륭한 어머니십니다!"

리홍광은 리부평의 손을 굳게 잡아주었다. 리홍광은 바로 이런 사람이였다. 그는 가렬처절한 전투의 나날에도 시간만 있으면 밀영을 찾아주고 항일가족들을 만나면서 고무하여 주었다. 더욱이 리부평과 그들 가족들과는 실로 보통 관계가 아니였다.

1934년 2월 항일련합군총지휘가 설립된 후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는 의연히 두갈래로 나뉘여 활동하였다. 독립사 제1퇀과 소년영은 다시 반석, 이통 쪽 강북근거지로 돌아가 유격투쟁을 벌이고 양정우와 리홍광이 이끄는 독립사 사령부와 제3퇀은 계속 강남 일대에서 투쟁을 견지하였다. 그러던 이 해 봄, 양정우와 리홍광은 독립사 200여명의 전사들을 거느리고 류하 경내로 행군하다가 량수하자 동쪽 고로툰에서 2,000여명의 적들에게 포위당하였다.

눈 앞의 현실은 대단히 준엄하였다. 리홍광은 랭정하게 적정을 살피다가 아군 40여명 장병들 모두가 군복을 벗어서 나무가지에 걸어놓고 로획한 일본수비대 군복을 갈아입도록 명령하였다. 그리곤 자기는 일본수비대 련장으로 가장하고 일본수비대로 차린 40여명의 전사를 거느리고 남쪽 고지로 나아갔다.

아군이 큰길까지 나오니 마침 탄약과 약품을 실은 6대의 자동차가 달려온다. 리홍광은 적의 차를 멈춰세우고 "왜 이렇게 늦게 왔소까? 응?"라고 일본어로 훈시하고는 일본군 군관인양 군도를 척 뽑아 일본놈운전수를 단칼에 찍어 넘겼다. 적들은 벌벌 떨었다. 리홍광은 지체할세라 위만군놈들을 호령하여 자동차에 실은 군용품들을 부리게 하였다. 때를 같이하여 양정우가 거느린 부대도 순리롭게 포위를 돌파하자 그들은 로획한 군수품을 지니고 유유히 몽강쪽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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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돌아왔다.

어느 날 제1군 독립사 사령부는 우리 지하공작자한테서 위통화현 서현장과 일본지도관이 통화를 떠나 류하로 회의차 간다는 정보를 보고받았다. 양정우와 리홍광은 통화와 류하 사이 길가에서 서현장의 자동차를 짓부시기로 하였다. 리홍광은 소속부대 200여명을 이끌고 밤낮 강행군으로 류하 타요령(驼腰岭) 도로 량쪽 산비탈에 이르러 매복진을 폈다.

이튿날 오전 10시경에 과연 서현장 일행 자동차가 류하 방향으로 달려왔다. 리홍광의 사격신호와 더불어 아군은 일제히 사격을 퍼붓다가 돌격하여 자동차를 산골짜기로 몰아세웠다. 늙다리 서현장과 그의 두 첩, 아들, 호위병 등 40여명이 아군의 포로로 되였다. 로획품은 보총 38자루와 권총 3자루, 탄알 1만 7,000여발, 금액 300여원에 달하였다.

서현장 차대 습격사건은 일제놈들을 놀래웠다. 위만주국 《성경일보(盛京日报)》에 통화현 서현장이 아군에게 습격당하고 처단된 경과가 그대로 보도되였다.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는 중공반석중심현위와 사장 양정우와 참모장 리홍광의 지도하에서 항일무장투쟁의 시련 속에서 끊임없이 단련되고 성장하였다. 독립사의 병력은 원래의 3배로 증가되여 1,000여명 대오를 이루었다.

1934년 11월 5일부터 10일까지 림강현 사도이차(四道二岔)에서 중공남만당 제1차 대표대회가 열리였다. 그번 제1차 대표대회에서 리동광을 서기로 하는 중공남만림시특위가 산생하고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이 정식으로 창건되였다. 군 아래에 제1사와 2사 두개 사를 두고 양정우가 군장 겸 정위로, 조선족 박한종이 군참모장으로, 리홍광이 제1사 사장 겸 정치위원으로 임명되였다(동북항일련군사료총서 《동북항일련군 제1군》, 흑룡강인민출판사, 1986년 6월 출판, 제91페이지).

제1군이 설립된 후 리홍광은 제1사 주력부대를 이끌고 환인, 흥경 등 압록강변으로 진출하였다. 이기간 리홍광은 200여명의 기병을 직접 령솔하여 백설이 뒤덮힌 압록강을 건너 조선의 하성읍을 습격하기도 하고 강안의 여러개 경찰서를 까부시기도 하였다. 이제 아래 비교적 상세하게 씌여지지만 1935년 년초에는 조선 동흥진진공전투를 벌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한달 퍼그나 지났는데 멀리 몽강 쪽 밀림 속에 위치한 부대밀영에는 아무런 소식도 전해지지 못했다. 밀영에 식량이 동강난지도 한달이 넘으니 밀영 책임자 리부평의 속을 바질바질 태운다. 리부평은 밀영의 생활을 개선하려고 작식대원들과 피복공장의 녀성들을 동원하여 눈보라치는 산비탈에서 눈 속을 파헤치며 눈밑에 깔린 마른 버섯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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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려운 나날의 어느 이른 새벽, 야무진 총소리가 밀영지 동쪽 방향에서 들려온다. 마침 적정은 아니고 새벽보초를 나갔던 리근호 대원이 수림 속을 헤집는 노루에게 한 불질이다. 리근호는 늘어진 노루 한마리를 끌고 흐뭇해 돌아섰다. 어느새 총소리를 듣고 달려나온 리부평과 몇몇 경상자들은 억이 막혔다. 리부평은 녀전사 영숙이를 보고 말했다.

"영숙이, 속히 밀영을 옮겨야겠네, 총소리는 이미 밀영을 폭로시켰지."

"어머니, 제가 그만 소홀했습니다."

어깨에 부상을 입고 후방병원으로 왔던 리근호는 만회할 수 없는 사태를 초래했음을 깊이 느끼였다.

눈덮힌 밀림 속에 날이 푸름푸름 밝아온다. 리부평은 리홍광 사장이 준 십련발 모젤권총을 허리에 차고 경상자들을 조직하여 중상자들을 전이시키는 한편 혁명군의 가족 전체를 피복공장의 군복전이에로 내세웠다.

리부평은 한 경상자와 같이 담가를 들고 림시밀영지인 말발굽산 소나무숲으로 향했다. 담가에는 한 중상자가 실리였는데 지칠대로 지친 부평은 그만 눈속에 푹 주저앉았다. 갑자기 자지러운 총소리가 들려왔다. 방향은 한 5리 가량 떨어진 원 밀영 주위다.

"어머니, 적들이 벌써 밀영을 포위한 것 같습니다." 영숙이가 담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글쎄 말이요. 아직도 왕동무와 피복공장 부대가족들 몇이 있는데…"

리부평은 백지도원과 영숙이한테 두명의 경상자를 데리고 밤새껏 남겨놓은 발자국을 메우게 하면서 리사장이 올 때까지 꼭 견지하라고 당부하고는 지체없이 원래의 밀영-생사의 마당에로 돌아섰다.

어느덧 밀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골짜기에 이르렀다. 리부평은 큰 봇나무 뒤에서 인차 모젤권총을 빼여들었다. 적토벌대놈들은 이미 밀영의 귀틀집을 수색하면서 불을 지르고 있었고 밀영의 서쪽 산등성이에서도 총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다. 놈들이 은페한 왕동무를 찾고 있다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였다. 왕동무를 구원하는 것이 무엇보다 요긴했다.

더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리부평은 서쪽 산등성이에 대고 몇방 갈기였다. 밀영 주위에도 련발사격을 가하자 불을 지르던 몇몇 왜놈들이 번들 나가 넘어졌다. 밀영을 수색하던 놈들과 서쪽 산등성이를 수색하던 놈들이 모두 리부평의 유인술에 걸려들었다. 리부평은 침착하게 이 나무에서 저 나무에로 옮기면서 달려드는 놈들을 쏘아넘겼다.

교활한 왜놈장교가 리부평 혼자 뿐인 것을 발견하고 산채로 잡으라고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리부평이 그 놈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격침소리만 날 뿐 탄알이 없었다. 리부평은 급기야 권총을 눈 속에 파묻었다. 총이 없게 되자 얼마 못가 왜놈들에게 체포되여 밀영으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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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는 벌써 솟아오른 태양이 밀영을 비추고 있었다. 밀영 중심지에 이르니 피복공장에서 미처 전이하지 못한 박퇀장의 아내와 신체가 허약한 두명의 부대가족과 열둬살 되는 처녀애가 꽁꽁 묶이운채로 끌려왔다. 왜놈장교가 유격대들이 간 곳을 대라고 윽박지른다. 리부평이 무언으로 그자를 쏘아보자 성이 난 장교놈은 리부평의 멱살을 잡고 큰 소나무에로 매질한다. 그리곤 부하들을 시켜 처녀애를 활활 타오르는 불무지에 처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