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광인 련재작ㅣ중국혁명 속 우리 겨레 혁명가들(남만편) - 5
发布时间:22-06-14 03:44  发布人:崔秀香    关键词:   

동북인민혁명군 1군 1사 사장 리홍광 - 5

이어 강행군을 하여 위엄있게 위만군 병영으로 들어섰다. 이미 전화통지를 받은 데다가 '일본수비대'여서 위만군은 의심도 하지 않았다. 일본어에 능한 리홍광은 이번에는 위만군 영장이 '황군'을 잘 환영하지 않는다고 호통치면서 순식간에 전체 무장해제를 시키였다. 얼떨떨하게 무장해제를 당하고 몽땅 생포된 놈들은 그 때까지도 눈 앞의 '일본수비대'를 진짜 황군으로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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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1933년 5월 29일 양정우와 리홍광은 남만유격대 300여명 대회를 소집하고 반석 연통산에 주둔한 위만군 14퇀을 습격한다고 선포하였다. 그런데 그만 변절자의 밀고로 작전계획이 폭로되여 일제놈들은 미리 일본군수비대, 경찰대, 위만군 도합 1,700여명의 병력을 아군 진격의 도중에 매복시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를 모르는 남만유격대는 수십배 되는 적들에게 포위되고 밤낮 3일간의 격전을 벌려도 포위를 돌파할 수 없었다.
이 생사의 위급한 관두에 양정우와 리홍광은 고민 끝에 일본수비대로 가장하여 적들을 미혹시키기로 하였다. 그리곤 리홍광이 직접 일본수비대 지휘관으로 꾸미고 일본수비대로 가장한 40여명의 전사들을 거느리고 동남쪽으로 빠지였다. 그 길로 십칠대목방(十七大木房)에 있는 위만군퇀부를 곧추 습격하여 퇀부에서 잠을 자는 6명의 일본군관을 생포하고 위만군의 무장을 전부 해제하였다. 군도를 빼들고 달려들던 제일 높은 군관은 그 자리에서 처단되고 위만군은 찍소리도 못하고 손을 들었다.
1933년 1월부터 5월에 이르는 기간 일제놈들은 번마다 1,000여명에 달하는 위만군과 경찰대, 투항한 토비무리들을 우리 남만유격대에 대한 련속 6차의 포위토벌에로 내몰았다.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지는 남만유격대는 양정우, 리홍광, 리동광 등 동지들의 지도하에서 도합 60여차의 전투를 벌이면서 적들의 련속 포위토벌을 격파하고 이름난 홍석랍자(红石磖子)항일유격근거지를 일떠세웠다. 반석 버리하투(玻璃河套)를 중심으로 한 홍석랍자근거지는 동서남북으로 사방 100여리에 달하는 남만의 첫 항일유격근거지였다(김양, 리원명 저, 《항일영웅 리홍광》, 민족출판사-연변인민출판사, 2015년 1월 출판, 제87페이지).
남만유격대가 양정우, 리홍광의 지휘하에 적들과 무려 60여차례의 전투를 벌일 때였다. 서버리하투에서만 하여도 6차례나 적들과 피어린 싸움을 벌여 일본군과 위만군 100여명을 소멸하고 근거지를 지켜냈으니 그 가운데는 남만의 영웅어머니 리부평의 노력도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리부평은 근거지의 혁명군중들과 함께 유격대에 물과 탄약, 음식 등을 날라갔고 담가대에 참가하여 부상자들을 구원하기도 하였는데 유격대 원호사업의 선두에는 언제나 리부평 부녀회원이 서있었다.
1933년 5월 7일에 소집된 중공반석중심현위 제4차 확대회의에서 리동광은 중공반석중심현위 제3임 서기로 당선되였다. 안해 김로숙은 중심현위 부녀위원으로 나섰다. 중심현위 위원인 리홍광은 당지에서 가장 미더운 동지인 리동광 부부가 중심현위 지도위치에 오른 것을 내심으로 기뻐하면서 서로 받들면서 일제놈들과 싸워갈 결의로 가슴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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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반석 동쪽의 호란진은 악패 대지주이고 대한간이며 위보안퇀 퇀장인 고석갑(高锡甲)의 소굴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허다한 항일지사들과 남만유격대 원 총대장 왕조란(王兆兰)과 정위 초향신(初向辰)은 이자들에게 살해되여 민분이 컸다. 1933년 8월 15일 양정우 정위와 리홍광 참모장은 남만유격대와 여러 항일부대를 련합한 1,600여명의 병력으로 호란진을 진공하였다.
일제놈들의 충실한 주구 고석갑은 견고한 화력점을 리용하여 결사적으로 아군의 맹렬한 진공에 막아나섰다. 치렬한 격전은 련속 이틀이나 이어졌다. 3일만에 반석의 적 지원병 200여명이 나타났다. 전투형세가 불리하자 전신(殿臣)부대 등 항일군은 실력보존으로 철거하고 마퇀(马团)항일군도 싸움터에서 물러섰다.
싸움터에는 남만유격대 300~400명 밖에 남지 않았다. 양정우와 리홍광은 조성된 극히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과감하게 남만유격대를 지휘하여 련속 세차례나 돌격전을 벌이였다. 지원병의 도래에 기고만장한 적장 고석갑은 북문을 열어제끼고는 고어른이 왔다며 득의양양하게 달려들었다. 리홍광이 직접 이끄는 아군 교도대 명사수는 말에 탄 고석갑놈을 단방에 요정냈다. 일본지도관 중도(中岛) 등 10여명도 뻐드러지고 15명이 부상을 입었다(중국조선민족사학회 홍광정신교육추진회 편, 《철혈충혼 리홍광과 그의 전우들》, 료녕민족출판사, 2019년 8월 3차 인쇄, 제14~15페이지).
1933년 8월 15일에 벌어지기 시작한 호란진진공전투를 그 시절 《동아일보》는 이틀후 8월 17일자 신문 2면에 <반석현주둔관동군 육백반만군과충돌> 제목으로 기사화하였다. 서울의 《조선일보》도 1933년 8월 17일자 2면에 기사를 내면서 호란진진공전투 소식을 알리였다. 반석현과 멀리 떨어진 서울에서 이 같이 두 신문이 신속히 보도한다는 것은 그만큼 호란진진공전투의 위력이 거대하다는 것을 잘 알려준다. 일제놈들이 크게 놀랐다는 산증실로 된다. 
정말 그러하다. 양정우, 리홍광이 직접 지휘한 호란진전투는 남만유격대가 고고성을 터친 후 처음으로 벌어진 대규모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된 타격을 받은 일제놈들은 양정우, 리홍광이란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하였다. 영국의 《템즈신문(泰晤士报)》이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남만유격대를 소멸하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도하였다면 《만주일보》는 "비록 우리에게 잔포한 경찰제도가 있고 수만의 일본원정대가 있어도 만주의 항일기세는 막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더욱 고조되여가고 있다"고 보도하기에 이르렀다(김양, 리원명 저, 《항일영웅 리홍광》, 민족출판사-연변인민출판사, 2015년 1월 출판, 제10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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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9월 18일, 중공반석중심현위와 남만유격대는 반석현 서버리하투 저요령 장수궁묘(西玻璃河套猪腰岭长寿宫庙, 오늘의 明城镇永兴村 저요령 남쪽 비탈)광장에서 성대한 대회를 가지고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독립사 성립을 정식으로 선포하였다. 양정우가 사장 겸 정위로, 리홍광이 참모장으로 부임하였다. 리홍광의 막내동생 리학규는 사령부 경위반의 꼬마전사로 되였다.
중공반석중심현위는 서버리하투 중심광장을 비롯하여 10여개 지방에 독립사의 성립을 경축하는 분회장을 두어 2,000여명의 반일군중들이 경축대회에 참가하도록 하였다(동북항일련군사료총서 《동북항일련군 제1군》, 흑룡강인민출판사, 1986년 6월 출판, 제47페이지).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는 사령부를 설치하고 사령부 아래에 제1퇀과 제3퇀 두개 퇀을 두었다. 이 밖에 정치부, 참모처, 군수처, 군의처와 정치보안련, 소년영 등을 조직하였다. 사와 산하 1퇀과 3퇀에는 정치부를, 련에는 지도원을 두어 부대로 하여금 당의 절대적 지도를 받도록 하였다.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는 중공반석중심현위의 령도를 받는 남만의 항일부대였다.
적들은 미쳐 날뛰였다. 뒤미처 12,0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1933년 10월부터 제1군독립사와 버리하투를 중심으로 한 홍석랍자유격근거지에 대해 전례없는 '동변도추기동기대토벌'을 감행하였다. 리동광을 서기로 하는 중공반석중심현위는 독립사와 련석회의를 가지고 독립사 산하 제1퇀과 소년영은 반석, 화전, 해룡 일대에서 계속 투쟁을 견지하고 사령부와 제3퇀, 정치보안련은 휘발하(辉发江)를 건너 금천, 몽강, 류하 쪽으로 남하하여 유격전을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10월 27일, 독립사 양정우 사장과 리홍광 참모장은 제3퇀, 정치보안련으로 무어진 주력부대를 이끌고 살얼음이 깔린 휘발하(辉发河)를 도강하여 금천(金川) 일대로 진출하였다(동북항일련군사료총서 《동북항일련군 제1군》, 흑룡강인민출판사, 1986년 6월 출판, 제61페이지). 출발을 앞둔 그날 저녁 무렵 부대가 서버리하투마을 동쪽가에서 당지 군중들과 눈물겨운 작별을 할 때 이미 중년에 이른 리부평 녀인이 기운 포대기에 어린 아들을 둘쳐업고 둘째를 데리고 리홍광 참모장의 두손을 꼭 잡았다.
"리대장(반석일대 군중들이 리홍광을 친절히 부르는 칭호), 이 앤 열일곱살이라지만 아직은 철부지우다. 그저 제 아버지와 맏이, 동지들의 원쑤를 갚으라고 입대시키우다."
"어머님은 참으로 훌륭한 분이십니다. 자식들을 모두 혁명에 바치니…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리부평과 그의 일가를 너무나 잘알고 있는 리홍광 참모장은 격동되여 뒤말을 잇지 못하였다. 억실억실한 두 눈에는 맑은 물기가 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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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추운데 어서 들어가시라요. 나 꼭 잘 싸울게요." 어깨가 쩍 벌어지고 몸집이 옹골차게 생긴 둘째가 어머니 리부평을 걱정하여 말한다.
"오냐, 꼭 인간답게 싸워야지…" 리부평은 둘째의 옷을 쓰러주다가 머리를 돌리였다. 뜨거운 눈물은 벌써 두볼을 적시며 흐른다.
"출발!"
대오 앞에 나선 리홍광 참모장은 드디어 출발명령을 내리였다.
우리 부대가 동쪽 밀림으로 사라진지도 이슥하건만 리부평은 내내 그 자리를 떠날줄 몰랐다. 부대가 떠나간 후의 마을은 텅빈 것만 같았다. 적들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뒤숭숭하여 마을은 보다 을씨년스러웠다. 마을 중앙에 자리잡은 리부평의 초막집은 더없이 쓸쓸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