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다채롭게 늘어선 ‘도쿄’
发布时间:22-01-07 11:03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편집자의 말: 재일본조선족 류춘옥시인이 도쿄시시리즈 제1탄으로 시집 <도쿄의 표정>을 출간했다. 이는 일본이라는 이국땅에서 정착하고 살아가는 중국조선족이 일본어로 펴낸 첫 시집으로 된다. 이에 본지는 전번기에 시집의 말미에 수록된 한영남시인(중국조선족)의 서평을 전재한 뒤를 이어 본기에 일본 도쿄대학 명예교수 가와나고 요시카쯔(川中子 義勝)이 쓴 시평을 전재해 도쿄시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평론

다채롭게 늘어선  ‘도쿄’

    -류춘옥 시집 ‘도쿄의 표정’을 읽고

        (일본)가와나고 요시카쯔(川中子 義勝)

책을 펴고 목차 페이지를 펼쳤을 때 눈길을 사로잡는 장관. 78편의 시 전부에 ‘도쿄의 ~’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그 밖에도 ‘도쿄인’이라는 제목이나 각 장의 표제에도 등장하는 ‘도쿄’를 세어보면 무려 85개에 이른다. 제6부의 장 표제는 정중하게 ‘도쿄’를 세번이나 중복한다. 이 정도로 하나의 주제에 열의와 마음을 담은 시집은 달리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

제1부부터 순서대로 읽기로 하였다. 어느 정도 읽다보니 일본에서 보고 들은 것이나 인상을 모두 ‘도쿄’로 대표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제1부의 장 표제는 ‘도쿄처럼 니뽄처럼’이다. 먼저 일본에서 목격한 사실의 기술이 이어진다. ‘매일 똑같은 모습이지만/形形色色 生의 모지름이/꿈틀거린다’(‘도쿄의 거리’). 일단 시작은 긍정적이다. ‘도쿄의 기모노’에서는 ‘꼭 입어보고 싶은데 아직까지이다/이제 딸애 시집갈 때면/원 없이 입어봐야지’라며 호의적인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을 소개하는 말투는 생기발랄하다. ‘ㅡ 짜잔, 회전초밥입니다’로 시작되는 ‘도쿄의 회전초밥’. ‘차이나 코리아도 빙글거리다 여기 와서/회전초밥을 먹는다/세상만사 여기서 빙글거리면/평화는 깃들고 인생은 행복하리라/더불어 어울려 빙글거리는’. 마치 가게를 홍보하는 문구같지만 시인이 받은 강렬한 첫 인상을 썼다는 마음이 전해진다.

시인은 왕성한 호기심으로 일본의 문화적인 삶에 관심을 기울인다. ‘도쿄의 차’를 마셔보고 차의 효용은 어디서나 같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고, ‘도쿄의 료고쿠(両国) 국기관’에서는 스모의 의식적 측면에 주목한다. 일본인에게는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어도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은 무엇이든 써내려간 문체.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일단 그 풍습에 익숙해지려는 열린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진다(‘도쿄의 아사쿠사(淺草)’). 때로는 일본인이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에 주목하는 그 눈썰미에 깜짝 놀란다. ‘도쿄의 충견 하치공’에서는 일본인은 개의 충성스러운 습성을 기특하게 생각하는 정도지만 ‘저도 모르게 숙연해지고/개한테 절이라도 하고 싶고/개를 스승으로 모시고 싶어진다’.라며 하치공 같은 충성심을 존경하는 시인의 마음가짐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도쿄의 스카이쯔리’에서는 ‘사람은 저렇게 우뚝 서고 볼 일이야’라며 자신감을 가지라 한다. 교훈을 좋아하고 진지한 성격이 돋보인다. ‘도쿄의 덕목’에서는 지하철과 버스, 야마노테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들을 보고 ‘사람이 사람 대접 받는/양보가 양보를 불러오는/사랑은 도쿄의 기본 덕목’이라고 쓰여 있지만、 일본인으로서 자신을 되돌아보면 창피함이 느껴지는 찬사. 이처럼  강렬한 감정표현에 멈짓하지만 강한 윤리성과 근면한 민족성으로 키워진 올곧은 성격이기 때문에 일본에서 회사를 세우고 그 정도로 성공시킨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 살기에 생기는 어긋남과 소외감도 쓰여 있다. 고향에서 찾아온 친정엄마가 관광을 즐기지만 손주와 말이 통하지 않아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한 채 돌아간다. 엄마가 살 수 없는 ‘도쿄의 벽들’.  가로막은 벽은 시인의 마음 속에도 조용히 서 있다. ‘도쿄의 사쿠라노래’를 들으면 그만 고향이 떠오른다. ‘아아 사쿠라가 억수로 흥건해지면/어느새 눈앞에서 삼삼거리는/고향 진달래’. ‘사쿠라가 흔들어주는 진달래련정’은 제2부의 장 표제인데 연모의 다름은 비판의 눈길을 키워주기도 한다. ‘도쿄의 종착역’에서 눈에 띄는 것은 사람들의 종종걸음. 인생의 종착역에서는 느긋하게 걸어야 한다고 말하는 시인의 눈에는 성실하고 도덕적인 고향 엄마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렇게 가는 길이/우리네 인생길’이라고.

가족에 대해 읊은 시는 모두 깊은 체험이 뒷받침되어 있다. ‘도쿄의 되박’에는 ‘겨울 찬비가 화살처럼 가슴에 꽂히는 날/단골집 되박에 넘치는 청주가/아버지를 그리는 통곡으로’라는 시인의 애절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평생 그 작은 그릇 하나 채우지도 못한 채/되박처럼 살다가신 울 아버지’라는 애달픈 추억. 또한 엄마를 존경하면서 자신도 엄마로서 일본에서 자녀를 키우는 고뇌를 읊은 ‘도쿄의 신량반전’. ‘인생의 계단’을 올라 온 경험을 전해 주고자 하지만 딸의 반항심에 슬퍼하는 어느 나라의 엄마에게나 공통되는 고뇌(‘도쿄의 계단’). 부모와 자식 간의 어떤 의미에서는 보편적인 불화에는 국가나 민족 간의 차이는 없다. ‘도쿄의 소리’에서 가족의 단란함을 보고 ‘도쿄의 바람소리’에 ‘옛날 할머니 기도소리’를 듣는 시인은 자신을 ‘도쿄의 텃새’ 즉 ‘도쿄의 까마귀’라고 말한다. ‘남편과 새끼들을 먹이겠노라/아침부터 주방에서 분주한 나도/도쿄의 한 마리 텃새일가/이름만이라도 철새라 불리웠으면/언젠가 고향 돌아갈’이라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망향의 마음을 품는다.

이처럼 슬픔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시인이 일본인을 보는 눈길은 사뭇 따뜻하다. ‘도쿄의 목욕탕’에서는 낯선 할머니에게도 친정엄마 대하듯 한다. ‘도쿄의 가사도우미’로 친정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을 고용했는데 처음에는 무슨 일이든 척척 해냈지만 나이가 들면서 청소가 엉망이되고 그러면서도 그만두지 않는 가사도우미. 곤란하지만 그 상황을 보다듬고 감내하는 다정함. 콩닥콩닥 18세 소녀처럼 할아버지 손 꼬옥 잡으신 ‘도쿄의 스즈키할머니’의 뒷모습을 행복한 눈길로 바라보고, 식사에 초대해 준 ‘도쿄의 사모님’의 따사로운 눈길을 표현하고, ‘도쿄의 알바생’이 가혹한 상황을 감내하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자신의 옛모습을 돌이키며 울컥한다. ‘옆모습이 더 아름다운 이 나라 국민들’이라며 시인은 불꽃놀이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정경을 그린다(‘도쿄의 불꽃놀이’). 표정과 겉표면에 그치지 않고 내적미까지 시인은 꿰뚫어본다.

‘일본인은 친절한 사람이 많다’. 반면에 일본어 억양으로 ‘아시아계 외국인이라는 게 발각되면 갑자기 바보 취급하듯이 돌변하는 일본인’도 있다(‘도쿄의 도쿄인’). ‘이방인에게는/한 사람의 불친절이/온 나라의 불친절이라는 것을/도쿄인들은 알가’. 일본인으로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깊숙이 반성하게 하는 문장이다. ‘도쿄에서 도쿄인들은/그들만이 진정한 재팬이라는 것을/그들은 알가’. 이와 같은 거만함은 일본인 역시(지방에 산다면) 느낄 것이다. 이러한 글에는 국적이나 거주지를 막론하고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보편성이 있다. 이는 또한 반대로 시인이 외국에서는 한 사람의 ‘내’가 고향의 전국민을 대표한다고 자각하고 있는 뜻이기도 하다. 시인의 일본문화에 대한 평가나 비판에 나타나는 절도(節度)는 이와 같이 의식적으로 넣고 있다.

시집의 제목으로 사용된 ‘도쿄의 표정’에서는 일본어 억양이 다르다는 것을 지적받아 분개하는 시인의 마음이 쓰여 있다. 또한 긴자 거리를 산책할 때도 이방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재팬도, 차이나도, 코리아도 아니에요’라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치는 모습이 절절하게 그려져 있다(‘도쿄의 조선족’). ‘나는 말입니다 중국 조선족입니다!/동그란 도쿄에서/도쿄가 세상 전부인듯이 생각하는 일본인들은/알 수가 없으리라/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는 내 형제들을/한반도에서 북만주*로 갔다가/이제 개혁개방으로/일본까지 건너와/이렇게/하지메마시테와 오세와니나리마스를 중얼거리는 내가’. 그 ‘내’ 출신은 이방인이라는 서러움을 가지고 타향살이를 하기에 가슴에 더욱 깊숙이 새겨진다.

도쿄의 밤하늘은 조명이 너무 밝아 별이 보이지 않는다. 스카이쯔리에서 내려다보는 거리의 불빛이 ‘도쿄의 별’. 그 조망은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서시’)라고 읊은 윤동주의 시절과는 마침내 다르다. 그러나 마음 속에서 시인은 동향의 선배 시인과 깊게 이어져 있다.

절제된 표현으로 드러나게 쓰여 있지는 않지만 시인은 일본에 온 이래 상당한 고생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도쿄의 비방울’이 눈물을 감추어 주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눈물과 또 때로는 기쁨의 경험을 읊은 시는 특별히 인상적이고 마음에 남는다. 아카스리 언니의 손을 악기 연주에 비유한 ‘도쿄의 바이올리니스트’에서는 ‘끝까지 우린 서로의 신분을 덮어둔채/우리 특유한 발음대로/일본이라는 이 나라의 언어로 대화한다’라며 슬픔이 시인의 ‘나’에 갇히지 않고 비슷한 상황에 처한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하여 열려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일본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돈이 없었던’ 시절, 에비스맥주 기념관에 가면 시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무료로 맥주를 마실 수 있다고 해서/류학생들과 함께 놀러 갔던 곳’의 추억. 맥주를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게 된 지금, 다른 맥주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도쿄의 에비스맥주맛’은 잊을 수 없다고 한다. 평자 역시 같은 경험을 한 적 있다. 독일에서 사비 유학을 했을 때의 가난한 생활이 떠올라 눈물 나도록 공감이 간다. 바로 앞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일본에서 온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뼈 속 깊이 의식한 시절이었다.

시인의 일본 생활은 반뼘도 안 되는 방의 가난한 생활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처음으로 화장실이 달린 집으로 이사갔을 때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런 시인도 지금은 울타리가 있는 넓은 집에 산다고 한다(‘도쿄의 울타리’). 시인의 그 성공에 진심어린 축복을 보낸다.

마지막으로 작품 그 자체의 재미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호기심 왕성한 시인은 토치기현 나스군까지 도쿄를 확장시킨다(‘도쿄의 혼탕’). ‘아이 다섯을 둔 나이임에도’, ‘남편 몰래 한번 기어이 용기를 냈지요’가 막상 일이 닥치자 ‘혼비백산한 이 아줌마/좀 살려주소/혼탕에 혼겁한 아줌마가 불쑥 지르는/엄마야!’ 자신을 객관시하여 그리는 유머 역시 시인의 정직한 성품을 말해 준다. 재치있는 표현과 솔직하고 재미있는 시인의 인간성에 탄복한다. 이 밖에도  ‘라면집 주인은 괜히 무섭게 생겼다/음식점 맞나 의심마저 든다’(‘도쿄의 라면’)나 ‘도쿄의 화장실’은 청소부와 이용자의 고마움이 서로 만나 인사를 하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말하고 ‘천당에도 화장실이 있다면/이 정도이지 않겠는가’라며 유모아적인 표현으로 멋지게 마무리한다. ‘붓으로 서예마저 가능한 히라가나/선명한 각으로 똑바로 선 가다가나/그속에서 어험 기침하는 한자-시쯔레이 시마시다’라며 짐짓 시치미 떼는 표현은 일본어가 모국어가 아님을 잊게 한다(‘도쿄의 문자’).

‘도쿄의 목련’처럼 뛰어난 연예서정시도 쓸 수 있는 시인이기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선천적인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표현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