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득촌진척
发布时间:21-09-03 08:52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수필

득촌진척

(봉성)장문철

돌이켜보면 참 꿈만 같고 감개가 무량해진다. 지금은 직원간의 로임차가 몇 십배 지어는 몇 백 배가 가능하지만 내가 사업에 갓 참가한 80 년대 초만해도 그 차이가 커서 몇 배에 그쳤었다. 약간 유치하고 불가사이한 느낌도 든다마는 나의 달 로임이 50 원밖에 안 될 때 같은 시에 사는 공정사 김씨 뚱보아저씨가 백 원을 번다고 해서 입이 떡 벌어지고 얼마나 부러워하고 흠모했는지 모른다.

그 때 백 원은 큰 돈이였다. 난 언제야 백 원을 벌지? 백 원을 벌면 만사가 형통할 것 같았다. 잠을 자면서도 백 원을 버는 꿈을 꾸었고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꿈꾸었다. 돈이 여유있는 사람이 정기적금을 해서 1년에 리자가 얼마라고 하니 귀가 솔깃해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깍쟁이 노릇을 하면서까지 돈을 쪼개고 쪼개면서 정기저축을 하기도 했었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바뀌여 어느날 나의 로임도 백 원을 넘겼다. 그런데 생각이 달라졌다. 더 큰 목표와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천 원을 벌면 가난에서 벗어날 것 같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릴 것만 같았다.

드디어 나의 로임이 천 원을 넘기게 됐다. 그런데 기쁨과 흥분은 잠시였고 또 마음 깊은 곳에서는 더 많고 더 높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고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니 또 눕고 싶고 누우니 자고 싶고, 여하튼 한 가지를 얻게 되면 그보다 더 큰 것을 갈망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인가 보다.

농민가수 주지문은 자기의 공연 출연료로 고향 마을의 질퍽한 흙길을 시멘트길로 건설했다. 그러나 CCTV기자가 취재하러 갔을 때 촌민들은 이에 만족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더 많은 돈을 기부할 것을 요구했고 길을 닦았으니 한 촌민에 자동차 한대와 만원씩 주기를 바랐다.

마웨이두(马未都)는 주지문사건을 언급할 때  만약 주지문이 차를 사준다고 하면 촌민들은 주유소도 설치해달라고 할 것이고 기름은 돈을 받지 말아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차의 배기량이 작다면서 배기량이 좀 더 크고 좋은 벤츠 600을 사줄 것을 요구할 것이고 벤츠 600을 사주면 경주용 자동차를 요구할 것이며 경주용 자동차를 사주면 트랙터를 사주는 것 보다 못 하다고 할 것이라 비꼬았다. 그는 촌민들은 주지문이 어떻게 해도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것은 전형적인 중국사람들의 남이 못 살면 비웃고 남이 잘 살면 배아파하는 심리상태의 표현이라고 꼬집었다.

주지문은 한해에 이웃들에게 근 100만원을 빌려주었지만 한 사람도 제때에 갚아주는 사람이 없었으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갖은 명목으로 계속 돈을 꾸었고 거절당하면 배후에서 비난과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지어 대문을 차거나 마당에 벽돌을 던졌다.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일이며 인지상정이라 시야비야할 것은 못 되지만 자기 노력없이 남의 성과를 공으로 탐하며 그 것을 합리화하려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

내가 몇년 전에 살던 아파트단지는 관리가 부실해서 점점 업주들이 관리비를 내지 않아 아파트단지관리실이 해산되고 말았다. 이 아파트단지는 대문이 아파트 한가운데에 있는데 사람들은 먼뚱(門洞)이라고 했다. 먼뚱은 자동차 석대가 나란히 드나들 정도로 꽤나 넓었고 이런 먼뚱이 아파트단지에 두개나 있었다. 아파트단지관리실이 없어지자 먼뚱은 차츰 정차장으로 변해갔다. 사람이 드나들 공간을 내놓고는 승용차나 자전거를 제멋대로 세워놓아 명실공히 개인들의 차고가 되고 말았다.

후엔 또 어느 머리 좋은 사람의 발상인지 먼뚱 벽쪽에 자물쇠가 달린 완연 컨테이너 같은 철판상자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자 인차 이런“컨테이너”들이 따라서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자리가 없으니 점차 마당의 구석으로, 다음은 인행길 량옆으로 보급이 됐다. "작디작은 불티가 온 들판을 태울 수 있다"는 말을 여기에 쓰면 적합할 듯 싶다. 사람들은 남이 하는 일을 자신이 따라 하지 않으면 흔히 피해의식을 가지는 것 같다.

인기 배우 주스마오(朱时茂)와 천페이쓰(陈佩斯)의 소품《후춧가루(胡椒面)》에서 진(陈)이 상 맞은켠에 앉은 주(朱)가 가지고 온 후춧가루를 식당의 것으로 오해하고 가져다 씀으로 해서 두 사람은 실랑이를 벌이게 된다. 그러다 주가 식당을 나가면서 후춧가루병을 가방에 챙기자 진은 식당종업원에 향해 큰 소리로 저 사람이 식당의 후춧가루를 훔쳐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참 있어도 식당켠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자기가 먹던 훈툰(馄饨)사발을 핫저고리속에 감추고 나가버린다. 네가 가져가도 되는데 왜 나라고 못 가져가겠느냐는 보통사람들의 잠재의식의 자연 발로인 것이였다. 인간의 집단적인 단점이랄가! 

아파트단지에서 일어난 일도 그렇다. 하루 아침에 발생한 것이 아니므로 가도(街道)나 사구(社区)에서 알만도 한데 귀먹은 벙어리마냥 눈먼 봉사마냥 개입을 하지 않았다. 아마 시끄러운 일은 많은 것이 적은 것만 못 하고 적은 것이 없는 것만 못 하다고 여기는 모양이였다.

옳은 사회질서와 바른 공중도덕은 일정한 법도와 규제에서 비롯된다. 우리 정부의 책임일군들이 주민들의 생활에 무관심하고 잘못 관리하거나 잘못 인도하면 주민들은 시비가 혼돈돼 시비의 갈림길에서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하게 되며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엄격한 제도와 규제를 떠나 사람마다 자률하고 고상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건 공상이다. 사람마다 규칙의식이 세워졌을 때 질서는 정연하게 되고 공중도덕은 지켜지는 것이다.

언젠가 읽었던 한 편의 동화가 떠오른다. 쌀쌀한 가을 바람이 부는 어느 날 여우는 벌벌 떨며 토끼네 집 문을 두드렸다. 《안녕! 그런데 무슨 일로?》하고 토끼가 문을 열고 물었다. 《내가 배가 고파 그러는데 빨리 먹을 것 좀 다오.》하며 여우가 두 손을 내밀었다. 토끼는 여우 꼴이 하도 가련해 보여서 《오, 우리 집에 먹을 것이 많아, 좀만 기다려.》하고는 안에 들어가 먹을 것을 내다 주었다. 여우는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떠나갔다.

며칠 후 여우는 또 토끼네 집에 와서 문을 두드렸다. 토끼는 이번에도 아무 말 않고 시원스레 먹을 것을 내다 주었다. 그런데 후에 이런 일이 계속 되풀이 되자 마침내 토끼는 《미안 하지만 혼자서 먹이를 찾아봐!》하고 거절했다. 그러자 여우는 《너네 집에 먹을 것이 많다면서 나에게 좀 주면 안돼?  빨리 줘!》하고 소리쳤다. 이에 토끼는《내가 너에게 주고 안 주고는 나의 자유야. 너무 득촌진척하지 마라!》하고 차가운 말을 던지고 문을 쾅 닫아버렸다.

 여기서 한자성어 득촌진척(得寸進尺)은 한 촌을 가지게 되면 다음은 한 척을 가지려 한다는 말로서 탐욕이 끝이 없음을 비유한 말이다.

 민간엔 “네가 나에게 1 척을 대접하면 나는 너에게 10척을 대접한다(你敬我一尺我敬你一丈)”는 말이 있다. 득촌진척도 득촌진척나름으로 어떻게 영위해나가는 가에 따라 성질이 달라진다.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부단히 보다 나은 생활을 개척하고 작은 은혜를 입었을 때 보다 큰 베품으로 보답하려는 것, 작은 성적을 얻었을 때 보다 큰 성적을 쟁취하려는 것 등 자세는 긍정적인 에너지로서 고양할 바다. 하지만 탐욕이 그지없고 공공시설을 함부로 점유하거나 민폐를 끼치고 배은망덕하며 은혜를 원수로 갚는 따위의 득촌진척은 취할 바가 못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