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길가의 목련(외3수)
홍연숙
1
딱딱한 바닥에 무릎 꿇고
오래동안 기도하며
무엇때문에 기도하는지 모르고
태여나니 그 자세였어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2
하늘이시여
하늘은 한번도 굽어보지 않고
올려다보며 끝없는 하늘만 따라가고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모르고
뒤돌아 본 적 없고
멈출 수 없고
교과서의 가르침대로 싸워서
이겨야 했고
죽여야 했고
살아 남아야 했어
인생은 한방이라고
순간에 피였고
이렇게 잠간인 줄 알았더라면
꿈도 꾸지 않았을 텐데
밀리고 밟히고 죽어나간 얼굴들이 자꾸만 찾아와 괴롭히지 않았을 텐데
툭~
비명도 지를 새 없이
꼰지박히며
3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
죽기살기로 오르는 것들이
어차피 꼰드라질 것들이
누렇게 병 들어
병원의 쪽문만 내내 쳐다보다가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숨져 갈 것들이
고고한 순백은 몸 안에 머물지 못하고
말라서 갈색으로 부서져 흩어지고
인사불성이 되여
느슨한 괄약근 사이로
헛 소리들만 지저분하게 새어
밟히고 쓸리고 사라져가는 허명들이
길가에
발톱을 세운 목련이
한알의 사과
이 가을에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물이 가득 찰 만큼
사과가 익었다
사과의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으리라
한입 물리고 씹히고도 모자라
질식할 정도로 부패되여
똥이 되여가는 그 고통만큼
사과는 익었다
개 돼지 소 닭이 지르는 똥을
알몸으로 다 받아 들이고
거름은 원래 썩은 내 난다며
견뎌온 사과는
상큼하게 익었다
아프리카의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우리 잘못이냐고
분쟁으로 고립된 난민들의 아픔을 우리가 해결할 수 있냐며
전쟁으로 강간당하는 녀자들의 고통은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할아버지가 일궈 놓은 땅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단물만 빨아 들인 사과는
보기좋게 익었다
크게 한입 물다가 꿈틀대는 삼시충에
기절 할 만큼
단풍구경
단풍놀이 끝나고
우수수 쓸려오는 낙엽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식당으로 들이 닥친다
허구 헌 날 밥 푸며 밥벌이 하는데
밥 한 때 먹기가 이렇게 버거워서야
밥 떠 놓고 앉았다 섰다
왔다 갔다
먹어치우기의 단순함이
미련하게 피와 살을 녹이고
후줄근히 젖은 옷이 의자에 쓰러진다
하늘이 설핏 거리고
구름이 언뜰 하더니
뉴스 하나 없는 먹통인 테레비에
가을을 구겨넣고 활활 태운다
불 붙은 나무들이 머리채 흔들며 쌍둥이 호수로 뛰여든다
밥 먹자
젖은 옷이 소슬소슬 일어나
단풍잎들이 사르르 쏟아지고
밥 맛이 익어가며
가을 향이 넘친다
쓰레기
소설가는 쓰레기로 되는 중이다
밑 바닥까지 내려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쓸 수 없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소설가는
구린내나는 구뎅이만 파고 다니며
왕창 썩어 갈 거다
쓰레기속에는
부자들이 돈 때문에 싸우거나
시인이 미투에 걸리거나
녀교사가 미성년자를 추행하는
냄새가 완전 수준급이다
소설가는 더 깊이 썩어 들어가
부자는 재산을 지키는 어려움이 있고
시인은 자유를 선호하고
녀교사는 사랑이 넘친 거라며
쓰레기는 사회발전의 산물이라고
쓸고 쓸어도 자꾸만 생기는 거라고
내조의 녀왕 엄마도 늦 바람에 집 나가고
기업의 제왕 아버지도 횡령죄로 감옥으로 가고
친 형제도 푼 돈에 개 처럼 물고 뜯고 싸운다고
털면 다 나온다는데
목사도 대통령도 피할 수 없다는데
너도 한번 털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