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어머니의 코노래
发布时间:21-07-23 08:50  发布人:金卓    关键词:   

수필

어머니의 코노래

(심양)박경남

온 세상이 코로나19로 심한 몸살을 앓는 와중에도 신록의 향기가 가슴에 넘치는 푸른 5월의 어머니날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날도 날인지라 어머님이 무척 보고 싶어 문을 나섰다. 거리에는 이왕에 비해 꽃을 든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난생 처음으로 꽃집에 들려 어머님이 좋아하는 싱싱한 생화 한묶음을 사들고 어머님이 홀로 계시는 서탑아파트단지로 향했다.

키를 가지고 있었으나 어머님의 반응을 보기 위해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소리가 두세번 울리고 끝날 때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또 초인종을 눌렀다. 역시나 반응이 없다. 급해진 마음에 무작정 문을 열고 거실에 들어서니 글쎄 쏘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한국 텔레비죤 ”전국 노래자랑”을 보시면서 가수 오승근이 부르는 노래 “내 나이가 어때서”를 따라 부르며 만면에 밝은 희색을 가득 띠우고 있었다. 생각밖에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어머니의 밝은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았다. 두근거리던 가슴속에 저도모르게 기쁨이 스며들었다. 나는 가져간 꽃다발을 어머니 앞가슴에 안겨드렸다. 난생 처음 아들한테서 향기 그윽한 생화를 받아들은 어머니는 눈가에 맑은 이슬을 머금었다.

만년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에게 한국 드라마는 인생의 동반자이자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는 둘도 없는 보약 같은 친구다. 아침 저녁으로 아무리 몸이 불편해도 꼭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은 이제 어머니의 굳은 버릇으로  되였다. 드라마에 조금만 슬픈 장면이 나와도 눈물을 글썽이는 어머니는 정말로 다정다감하다.

오늘따라 기쁨과 반가움에 휩싸인 어머니 얼굴엔 무상의 희열이 가득 넘쳐 흘렀다. 주방에서 구색을 맞추어 점심 밥상을 차리면서 연신 흥얼거리는 어머니의 코노래가 나의 가슴을 자못 흐뭇하게 했다. 느닷없이 어머니의 코노래를 듣는 순간, 홀연 뭐라고 형언 할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뭉클하여 마치 목구멍을 꽉 틀어막는 것 같은 느낌으로 코마루가 찡했다.

어머니는 홀로 되신지 어언간 25년이 흘렀다. 그동안 어머니는 비록 옛날처럼 등이 휘도록 고된 일은 하지 않았지만 반 평생을 흙냄새 풍기는 시골 초가집에서 자녀들과 오손도손 시름없이 살다가 홀연 현기증나는 도시의 덩실한 아파트에서 홀로 사는게 꽤나 외롭고 고독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아파트 단지엔 다수가 한족들이고 조선족은 가물에 콩 나듯 거이 찾아볼 수 없었다. 중국말이라곤 겨우 “니디”, ”워디”밖에 모르는 어머니는 아마도 언어가 불편하고 아는 친구가 없어 명랑한 기색보다 늘상 우울한 표정에 황혼의 애수와 고독이 비껴있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고 한가하면 추억이 묻어나고 친인이 그리운 건 인지상정이다. 과연 그래서인지 어쩌다 내가 집에 한번 가면 어머니는 반가와 어쩔 줄 모른다. 그리고 어머니는 항상 처음인 것처럼 자초지종 흘러간 옛날에 자신이 겪은 고달픈 인생의 파란 우여곡절을 하염없이 길게 풀어놓군 한다. 그때마다 나는 어머니의 고생담을 잘 들어주는 것이 곧바로 어머니의 고독감과 우울증을 치유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느끼면서 낮은 자세로 경청하군 했다.

 몇년사이 어머니는 무척 많이 늙으셨다. 마른 풀처럼 윤기없는 어머니 얼굴, 가로세로 파인 굵은 주름살, 활처럼 둥글게 굽은 등, 파뿌리처럼 허연 귀밑머리를 바라보면  언젠가는 어머니도 매미처럼 얇은 옷 한 벌 고스란히 벗어놓고 자식들 곁을 소리없이 떠나야 한다는 측은한 마음이 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년로하신 어머니에 대한 근심과 걱정은 깊어만 간다. 날씨가 추워도 더워도 비가 오고 눈이 와도 늘 걱정이 앞선다. 어쩌다 어머니께서 전화를 조금 늦게 받아도 간담이 서늘하고 한밤중에 전화 벨 소리만 들려와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군 한다.

오늘따라 쾌적하고 아늑한 방안에 연신 어머니의 귀맛 좋은 코노래가 은은하게 흐른다. 희열감에 들뜬 분위기 속에 점심 식사를 하면서 어머님께  “오늘 무슨 경사가 있길래 연신 코노래를 부르시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어머님은 그냥 싱글벙글 웃으시며 “어제 밤, 꿈에 난생 처음으로 돌아가신 아버님이 어머니의 두 손을 꼬옥 붙잡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우리 이젠 싸우지 말고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자’고 새끼 손가락을 꽉 걸고 약속 했다”면서  금시 눈시울을 붉혔다.

젊어서 아버님께 심한 괴로움을 당하신 어머님은 꿈에서라도 아버님이 참회의 눈물과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듣는 게 소원이였단다. 비록 꿈은 사실에 대한 허워적인 반응이지만 때론 꿈도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사랑의 단비가 됨을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비록 어머니의 코노래는 조금은 거칠고 미묘하지는 못하더라도 아무튼 나는 듣기 편안하고 감미로웠다. 사람들은 흔히 “듣기 좋은 노래도 두 번 들으면 재미없다”고 말하지만 그냥 기분 좋아서 흥얼거리는 어머니의 코노래는 자꾸만 들어도 실증나지 않는다.

앞으로는 자주 어머님을 찾아뵙고 어머님의 코노래를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