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광인 련재작ㅣ중국혁명 속 우리 겨레 혁명가들(관내편) - 127
发布时间:20-11-13 10:09  发布人:金卓    关键词:   
그리고 4월 29일 중앙군위의 명령을 받은 간부퇀주숙지는 운남 록권현 경내이다. 록권현에서 금사강교평도까지 보여지는 지금의 거리는 150킬로미터로 나타난다. 홍군장정시기 간부퇀 정치부주임 막문화는 280리라고 했다. 허다한 회고문들이 200여리라고 한다. 중앙군위에서 간부퇀의 선견지대 3영에 5월 1일까지 도강을 명령하여 강행군이 시작되였는데 이 280리, 300리 거리를 아무리 어려운 산 속 헤치기라도 4월 29일 오후부터 5월 3일 밤까지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설득되지 않는다. 보다싶이 간부퇀 선견지대(선견영)는 강행군 속 강행군이였다.

4월 29일 명령을 받아서부터 금사강을 돌파하기까지 행적을 추적하여 보았다. 이는 아직도 계속되는 연구가 필요함을 느끼면서 이 기간 간부퇀의 행적을 초보적이라도 밝히지 않으면 안되였음을 밝혀둔다. 이는 중앙홍군의 금사강도강이나 간부퇀의 도강, 간부퇀 참모장 양림의 이 부분 전기 완수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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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80년대 해빛을 본 첫 양림전기를 보면 양림이 간부퇀 선견지대 전위련과 함께 행동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전위련 련장인 소응당의 회고에는 양림은 보이지 않고 동행한 지도일군들은 부영장 곽해원과 지도원, 공작조 리동지 등만 언급된다. 모두가 부영장과 토의하고 전위련을 움직이였다고 한다. 전위련의 1패와 2패를 두척의 배에 태워 대안나루터를 습격탈취하게 한 것도 자기의 명령이였다고 쓰고 있다. 전위련을 이끄는 련장이니 이는 당연한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지난 80년대 양림전기는, 금사강 교평도나루터에 이른 후 양림이 전위련의 정찰병을 시켜 적정과 나루터의 형편을 탐지하게 하니 대안에는 세금을 징수하는 리금국(厘金局)과 30-40명의 보안대가 있고 아침에 정규군 한개 련이 증파되였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쓰고 있다. 적들은 사복한 자들을 무시로 건너보내여 형편을 탐지할 뿐이였다, 그런데 그날은 웬 영문인지 강을 건너온 놈들이 여직 돌아가지 않고 두척의 배가 홍군을 '맞아주고' 있었다, 양림은 소수 병력을 두척의 나루배에 태워 대안나루터를 신속히 습격탈취하기로 결정하였다, 동원 끝에 적에게 끌려온 배사공이 배를 젓기로 하였다 등도 그 시절 양림전기의 산물이다. 양림이 금사강진군시 진갱 퇀장과 더불어 간부퇀 주력부대를 지휘하였다는 진귀한 자료를 찾아낸 오늘 이 부분은 직접 양림과 이어지지 않는다.
어찌하든 간부퇀 전위련의 선참 강행도하는 력사의 진실이라 하겠다. 전위련의 1 패가 두척의 나루배에 갈라앉아 선참 강심으로 나아갔다. 강이 넓고 물살이 세여 작은배는 무시로 기우뚱했지만 우리 용사들은 두려움없이 전진했다. 배가 대안에 닿자 홍군전사들은 날렵하게 돌층계에 뛰여올랐다.

홍군전사들의 모젤권총 앞에서 적의 두 보초병은 찍소리도 못했다. 우리 전사들은 총 한방 쏘지 안고 한개 련의 적군과 보안대놈들을 전부 생포하였다. 새날 5월 2일이 밝아왔다. 간부퇀의 두갈래 대오가 선후로 금사강 교평도나루터에 도착한 후 간부퇀은 공병련을 중심으로 부근 마을들에서 사온 참대로 다리를 놓을 부교틀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백방으로 부교틀을 강심으로 움직이니 파도치는 급류는 대번에 부교틀이랑 아래로 쓸어내리였다. 금사강의 수심이 깊고 물살이 센데서 근본 부교를 놓을 수 없었다. 금사강을 배로 강행도하여야 하는데 처음 홍군측엔 두척의 나루배 밖에 없었다.

 

금사강 량안
당지 사공인 리정방(李正芳)의 회고에 따르면 간부퇀의 홍군수장들이 당지 사공들을 불러 긴급모임을 가지였다. 긴급모임에서 교평도 아래구간 맹고나루터(勐古渡口)에 한척의 배가 있음이 알려졌다. 그러나 사공들은 금사강 물살이 급한데다가 아래쪽이여서 맹고의 배를 이동해올 수 없다고 했다. 사공들은 또 교평도나루터 웃구간인 로차나루터(鲁车渡口)에 배 두척이 있음을 떠올렸다.
간부퇀에서는 한패의 전사들을 로차나루터로 파견하였다. 그때 30여살인 리정방의 둘째 삼촌 리유재(李有才)가 모든 희생과 후과를 아랑곳하지 않고 홍군의 안내자로 나섰다. 그들은 맹고나루터 주변에서 리유재가 잘 아는 사공 강곤재(康坤才)를 찾았고 두 사공이 각기 노를 잡았다. 그들은 힘을 합쳐 금사강의 99개 여울(滩), 99개 물굽이(湾)에서 가장 위험하다는 백니동 구간을 어렵게 이겨내고 배 두척을 끌어내리고야 말았다(139, 《금사강의 기억》, 운남인민출판사, 2006년 9월 출판, 제243페이지).
교평도나루터의 배는 6척으로 늘어났다. 간부퇀에서는 파손된 배들을 수리하는 한편 주덕 총사령께 "교평도에는 배가 6척이 있어 매일 밤 1만명이 도하할 수 있다"고 전보를 발송하였다(140, 《금사강의 기억》, 운남인민출판사, 2006년 9월 출판, 제38페이지).
그제날 금사강도하의 배사공 중 한사람이였던 장조만(张朝满)은 한편의 회고에서 배 6척중 두척은 비교적 큰 배여서 번마다 도하에 60명을 태울 수 있었고 이보다 작은 배 4척은 매번 도하에 40명을 태울 수 있다, 매 한척의 배에 당지 사공 6명이 배치되여 3명이 한조로 되여 륜번으로 노를 잡았다고 하였다(141, 《금사강의 기억》, 운남인민출판사, 2006년 9월 출판, 제234페이지).
간부퇀 장병들이 깐깐하게 수색해서 배 한척을 더 얻어내여 배는 도합 7척이 되였다. 나루배 7척이면 좌, 중, 우로 나뉘여진 우로-중앙종대의 도강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35년 5월 5일, 모택동과 중앙종대가 선후로 금사강을 넘어섰고, 류백승과 양림 소속 간부퇀의 장병들이 금사강 북안에서 렬을 지어 맞이하였다. 모택동은 나루배에서 내리자마자 마중나온 류백승을 보고 유머를 터뜨렸다.

모택동: 당신들 사천으로 왔는데 당신들은 무엇으로 초대하려 합니까?

류백승: 한사람당 한그릇 양고기탕입니다.

왕가상: 국 한그릇으로 초대한다구요? 너무 적은 같은데요.

류백승: 고기는 남겨 배사공들을 초대하려 합니다.

모택동: 배에 앉은 사람은 국이요, 사공은 고기라~백승의 처사는 정말 공정합니다.

잇따라 금사강 북안의 동굴 주숙지에서 류백승 참모장이 군위지도자들께 적정과 도강사령부 인선, 도강수칙 등을 회보하였다. 주덕도 발언권을 찾았다.
"1군단과 3군단이 룡가와 홍문 나루터에 부교를 놓기가 어렵고 배도 구할 수 없습니다."
"만약 모두가 여기로 강을 건넌다면 시간이 얼마 걸릴 것 같습니까?"
"배 7척으로 밤낮 건넌다면 매일 만명 쯤 건널 수 있습니다."
주덕의 보고에 모택동이 묻고 류백승이 대답하였다. 류백승의 시원한 대답에 모택동도 시원히 결론을 내렸다.
"이대로 합시다. 주덕동지가 배치하여 모두 여기로 와서 도강하게 합시다."
홍군 1군단과 3군단의 교평도나루터 도강은 이렇게 결정되였다. 금사강 룡가나루터 쪽이나 홍문나루터 쪽은 강폭이 넓은 데다 물살이 급하고 적기까지 저공비행을 하면서 기총소사를 해대는 데서, 배도 없고 부교도 놓을 수가 없은데서 원 도강계획대로 움직일 수 없었었다.
뒤미처 담가에 실려 도강한 진갱 퇀장이 찾아왔다. 류백승은 당장에서 진갱을 도강사령원으로 임명한다고 선포하고 흥분된 진갱은 과업을 상세히 교대해 달라고 조른다. 이 때 모택동이 말했다.
"도강사령부는 그대로 진운, 채수번(蔡树藩)이 사령원, 정위를 맡도록 합시다. 진갱과 송임궁 두 사람은 당신이 움직이지 마십시오. 내가 늘 쓸 일이 있습니다."
"아유, 어떻게 된 일입니까? 원세개도 80일간 황제를 할 수 있었는데 나 진갱은 8분간 도강사령을 했구만요."
성격이 괄괄하고 급한 진갱의 유머이다(142, 소지붕, 《홍군장정 회리를 지나다》, 2007년 1월 출판, 제34-35페이지).

홍1군단과 홍3군단 모두 교평도나루터로 쏠리였다. 간부퇀의 책임은 보다 무거워졌다. 간부퇀은 전체 중앙홍군의 절대적인 안전을 담보하고저 도강의 안전과 질서를 책임져야 할뿐만 아니라 교평도나루터로 이어지는 사천 회리쪽 통안주 구간을 막아야 했다. 통안주는 교평도에서 북으로 27킬로미터 밖에 안되는 거리인데 만일 적들이 통안주를 점령하고 내리쓴다면 중앙홍군의 금사강도하는 막대한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모택동 등 지도자들의 금사강 도강에 앞서 류백승은 간부퇀에 중앙군위와 군위종대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하여 우린 어떠한 희생을 내더라도 반드시 통안주를 점령하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면서 간부퇀 제3영에 1개 련만 남겨 교평도나루터를 지켜선 외 나머지 부대는 즉시 통안주로 출격하라고 명령하였다.
긴급나팔소리는 곧 명령이였다. 제3영의 장병들이 재빠른 동작으로 대렬을 짓자 선견대 사령 류백승이 나서서 출발명령을 내리였다. 명령에 따라 간부퇀 참모장 양림이 선견영인 제3영의 2개 련을 령솔하여 즉각 통안주 방향으로 출격하였다. 상간대 대장 소경광이 양림을 협조하여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