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내를 업다
发布时间:20-05-11 10:33  发布人:金卓    关键词:   

수필

 

아내를 업다

 

      (단동) 박흥철

 

  지난 국경절 련휴에 나는 아내와 함께 봉황산관광을 다녀왔다. 그번 관광에서 산을 내려오다 난생 처음 아내를 업어본 나는 지금까지도 그날의 정경을 잊지 못한다.

  봉황산은 정상에 오르는 코스가 갈래 있었다. 하나는 대문에서부터 서쪽산비탈까지 놓여진 목질잔도를 통해 오르는 코스였고 다른 한갈래는 차량이 오르내릴 수 있는 아스팔트길이였다. 가만히 살펴보니 관광객 대부분은 원시적 분위기가 다분한 목질잔도를 리용하고 있었다. 하여 우리 부부는 관광객이 적게 리용하는 아스팔트를 통해 산을 오르면서 주위의 풍경을 마음껏 흔상했다.  

  나와 아내는 중매군의 소개로 알게 되였고 만난지 두달 만에 결혼하였다. 번개식 혼인이였다. 대학에서 공부할 때 나는 이성에 눈이 늦게 열린 지라 다른 동창들이 쌍쌍이 드나들 때 얌전하게 공부에만 몰두했고 그러면서 열련에 빠진 그들을 속으로 비웃기도 하였다.

  졸업하고 사업에 참가한 후에 동창들은 선후로 결혼하고 자식까지 낳아 기르는 것을 보고난 후에야 나는 늦어졌다는 생각에 서둘지 않을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배우자 표준을 낮추고 또 낮추었다. 대학졸업생을 고집하던데로부터 나중에는 아예 학력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중매군의 소개로 지금의 안해를 만났을 때는 이미 서른세살을 벗어난지라 더는 뒤로 미룰 수 없었다. 하여 만나 두달 만에 서둘러 결혼하였다.

  아내는 나보다 열살이나 어리다. 중매군은 나를 아내측에 소개할 때 내 나이를 두살 줄이였는데 나는 고의적이는 앉지만 실제로 네살 속인 셈이 되였다. 그것은 학교에 늦게 입학했던 내가 고중에 다닐 때는 이미 대학 입학 제한 나이를 초과했기에 생일이 늦은지라 나이를 두살 줄였었고 상황을 모르는 중매군이 거기서 또 두살을 줄였던 것이다. 결혼후 십여년이 지나 실제 나이를 아내에게 알려주었더니 아내는 정색하여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만약 그 당시 당신이 나보다 열살이나 많다는것을 알았으면 조건이 아무리 우월해도 절대 당신에게 시집오지 않았을 거예요.”그러면서 나보고 절대로 친척이나 친구들 앞에서 진실한 나이를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다.

  나의 아내는 현처이다. 결혼해서 5년 동안은 직장이 없이 집에서 아이를 보살피며 가정살림을 알뜰히 꾸려나갔다. 집 앞에 작은 터밭을 장만하고 친정에서 포도묘목을 가져다 키우고 해마다 딸기모를 가져다 심어 철따라 딸기며 포도를 떨구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이가 열살 나는 해에 아내는 한국으로 돈벌이를 떠났다. 그번 한국행을 아내 는 장장 십여년을 말없이 견지했다. 아들이 대학입시에 참가하게 되자 서둘러 귀국한 아내를 석달 동안 아들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했다. 아들이 대학에 입학한 후 아내는 또 한국으로 떠났다. 그간 한국에서 번 돈으로 아들의 대학공부를 뒤바라지 하였고 단동신구에 아들의 결혼용 아파트까지 마련해 놓았다.

  지난해는 아내가 한국에 나가 일한 14년 째다. 비자 기한이 완료되여 집으로 돌아왔고 새 비자가 나오려면 시일이 걸렸다. 아내가 집에 와있는 동안 나는 우리 가정을 위해 온 몸을 바치고 있는 아내를 위해 무엇을 할가 고민이 많았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해준것이 별로 없었다. 가끔 일만 하느라 마음놓고 치마도 입어보지 못하고 녀자로서 누려야 할 많은 것들을 놓쳤다고 원망하면서 그때뿐 마음속에 넣어두지 않는 아내였다. 나는 아내 몰래 봉황산 관광을 신청하였다. 떠나기 전날 함께 봉황산에 관광갔다오기로 했다는 나의 말을 듣고 아내는 기뻐서 어쩔줄 몰라했다. 가정을 위해 한몸 다 바치고도 응당 누려야 할 관광임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아내를 보는 나의 마음은 평온치가 않았다.

  산 정상에서 봉황산의 아름다움을 한껏 만끽하고 내려오는 길에서였다. 아내는 뜻밖에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업어달라고 애교를 부렸다. 아내의 갑작스런 요구에 잠시 어리둥절에 빠졌던 나는 급기야 아내를 등에 업고 힘있게 앞으로 걸어갔다. 우리 옆으로 관광차가 띠엄띠엄 지나가고 오고가는 관광객들이 부러운 눈길을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