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교육의 성스러운 일터를 지켜
发布时间:2018-09-29 16:05  发布人:김 탁   关键词:  

송화강 남안 가목사시 승리로에 위치한 가목사시 조선족 기초교육중심(이하 가목사 조중), 그 시원은 일찍 1947년 성화에 창설된 사립학교인 고려학교이다. 장장 70년간 우리말과 민족문화를 전파하는 명맥을 유지해온 가목사 조중은 흑룡강 동부지역 조선족 중소학생들을 위한 배움의 터전을 고수하고 있다.

  1956년 성화조선족향으로부터 초중부가 가목사시내로 이전하고 1962년 초중부와 소학부가 합병, 1976년에 고중부가 설치된 가목사 조중은 소학교와 초고중 12년이 일관된 기숙제 민족학교로 되였으며 2002년 승리로 94호로 이주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부지면적 1만8000㎡, 건축면적 8500㎡에 달하는 가목사 조중은 학과별 실험실과 다공능교실, 열람실, 도서실, 체능훈련실, 컴퓨터교실 등 교수설비가 완비하게 갖춰지고 재학생수가 180여명, 교원수가 56명(그중 고급교사 22명)에 달한다.

  2014년부터 가목사지역 대학입학률 선두를 달려온 가목사 조중은 선후하여 전국 “교정축구기지학교”, 흑룡강성 “민족단결진보 시범단위”, “의무교육표준화 합격단위”, “민족전통체육종목 강습기지”, 가목사시 “민족단결진보 모범단위”, “교육계통 선진단위” 등 영예칭호를 수여받았다.

  기자를 맞아준 유학만 교장(54세)은 “최근년간 가목사 조중은 사회지명도가 제고되고 교원들의 신심이 향상돼 흑룡강 동부지역 소수민족학교중 시설규모나 교수질 방면에서 최우량 학교로 인정받고 있다”고 하면서 2018년 대학입시에 참가한 16명 졸업생중 2명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이 전부 대학에 입학했다고 소개했다.

  기자가 새학년 개학을 앞두고 가목사 조중을 방문할 무렵 학교건물 개보수 공사가 여전히 진행중이였다. 가목사시 정부에서 루계로 1천여만원을 투입해 가목사 조중의 설비시설은 다방면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과정이다. 민족학교에 대한 정부의 특혜로 가목사 조중의 고급교사 비률은 35%에 달해 가목사지역 학교들중 가목사 1중과 동등하게 두번째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조선족 교원을 사회적으로 초빙할수 있도록 특수정책을 향수하기도 했다.

  가목사시 “교사품격(师德师风)선진집단”이란 영예칭호에 걸맞게 학생들에 대한 사랑과 상하 교직원들의 책임감 역시 남다르다. 초고중 교수를 겸임해 선생님들의 강의록 준비가 배로 많지만 과외시간에도 기숙생들의 생활에 관심을 몰부어주었다. 학교를 집으로 생각하고 학생들을 자식으로 간주하면서 명절이나 생일날 애들을 챙겨주고 자기돈을 쓰면서 학생들의 병치료를 해주는 교원도 있었다. 사랑이 넘치고 품성이 고상한 인민교사로 되기에 손색이 없도록 이들은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타지역 조선족 학교와 달리 가목사 조중 과목에는 우리민속과 례의범절을 가르치는 “조선족수양”이라는 특별 과목이 설치돼 있다. 산재지역 특성이 다분한 가목사 지역 조선족 학생들에게 “민족문화교실”을 개설해 줌으로써 우리말과 민족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1992년부터 가목사 조중에서 근무해온 서홍매 교원(47세)의 소개에 의하면 “조선족수양”과목의 설치로 민속례의를 습득하고 민족정서를 키워주어 조선어문 교과서에 대한 리해력과 독서력도 향상하게 되였다고 한다. 이밖에 한국 재외동포재단의 지원으로 파견돼 나온 어문, 무용, 전통음악 강사들의 강의도 받을수 있어 조선족 학생들의 호응을 얻었다.

  1987년부터 30여년간 가목사 조중에서 체육교원, 총무주임, 공회주석, 부교장, 교장, 서기직을 력임해온 유학만 선생은 “민족교육사업이 힘들다는것을 피부 가까이 느끼고 있지만 학교면모가 개선되고 교수질이 향상될때마다 그 어떤 수고를 해도 헛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2009년 11월부터 지금까지 9년째 교장직을 맡아온 유학만 선생은 학교 규정제도 완비화와 교수질 향상, 조화로운 교정건설을 틀어쥐고 학교시설 개보수를 해마다 진행하여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지만 아직도 손댈곳이 많다고 하면서 자신의 임기내에서 학교규모가 축소되지 않도록 하는것이 가장 큰 소원이라고 한다.

  차세대 육성을 위한 민족교육의 막중한 과업을 짊어지고 오로지 한길을 달려온 유학만 교장은 “현지 조선족들의 대이동으로 학생래원이 계속 줄어들고 조선족 교원대오 보충도 시급히 해결돼야 할 문제”라고 하면서 “민족교육의 사명감과 애착심,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뛴다면 민족학교의 미래는 여전히 밝을것이라 믿는다”고 말한다.

  1966년부터 1991년까지 25년간 이 학교 교장을 맡았던 정운옥(83세, 사진 오른쪽 두번째) 선생은 유학만 교장의 치적을 높이 평가해 주었다.

  “젊은 선생님이 교장으로 올라오니 학교 면모가 확 달라졌습니다. 학교 기본건설을 틀어쥐고 교원들을 단합시키며 학생들의 숙제검사를 까근하게 하도록 요구하면서 첫 2년간은 과로로 눈이 충혈될 정도로 정력을 몽땅 학교에 몰부었지요. 지금은 다른 학교에서 보기 힘들겠지만 유교장의 요구에 따라 선생님들이 직접 마을로 내려가 학부모들을 만나 소통하고 대학입시기간에는 교장 선생이 사흘동안 적접 현장에 나가 있습니다. 올해 직장 수술을 받았는데 유교장은 학교 개보수 공사때문에 방학간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에 퇴직한 로교원이 42명인데 유교장이 로인활동실을 마련해주어 주일마다 활동할수가 있게 됐고 지난번에는 팔순잔치도 치뤄주었습니다. 로교원들에 대한 존중이 바로 현임 교원들이 자긍심을 갖고 일하도록 열성을 불러일으키는 의의있는 활동이라고 하면서 우리들 행사에 자주 나와 봅니다. 다른 학교 선생님들 참 부러워합니다.”


흑룡강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