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파 시인을 추모하여
发布时间:2018-01-09 13:59  发布人:오희성   关键词:   点击量:280

어제 김파 시인이 타계했다는 청천벽력 비보를 들었다. 그는 <립체시>의 독특한 창발과 설득력이 강한 론리로 재래식 전통 시의 틀에서 벗어나, 시문단에 새로운 양상을 일으키고 기꺼운 성과를 올린 조선족 중견시인이다.


김파 시인은 우리 민족의 자랑스런 사람이며 필자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다. 20 여년간 저의 민족 문화 사업을 진심으로 도와주셨으며 우리들의 큰 문화행사마다  참석해주셨다. 특히 작년에 연변 최삼룡 선생님과 함께 대련개발구에 있는 우리의 사무실(大连金普新区朝鲜族文化艺术促进会) 찾아주셨는데 그날 상봉이 영원한 리별이라 생각하니 그 비통함을 이루 형언할 수 없다.


김파 시인은 1942126, 흑룡강성 해림현 신안진에서 태여났다. 1963 목단강 조선족고중 졸업그후 연변대학 조문학부 통신대학 본과 졸업 후 길림성 석현조선족중학교에 교편을 잡으셨고 1980 도문시 문화국 창작조로 전근했으며 1989년부터 대련에 이주 정착하셨다.


김파 선생님은 1986 처녀시집 <흰돛> 출간 후 1988 <대륙에 묻혀있는 섬>,  1992 <겨울나비>,  199 <천추의 충혼 안중근>,  2000 서정 서사시 <사랑의 >, 2006 2만여행의 장편 대하 서사시 <천년 고국 고구려> 출판하였으며 1,500여수의 우수한 시작품을 조선족 시단에 내놓으셨다.


어린 시절 저의 집은 흑룡강성 해림현 산시진 공사(公社)에 있었고 김파선생님의 고향 신안진 공사와 린접하여서 거리가 대략 10킬로 떨어져있었다. 대화중에야 옛날에 실상은 한 고향 사람이라는걸 알았고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서로 모르고 지낸 사실을 유감스럽게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김파선생님은 성격이 강경하고도 정의적이며, 례의범절이 바른 타입의 교육자 기질을 지녔다. 일반적으로 대방을 따뜻히 대해주며 관심하지만 비정의적 행위에 대해서는 사정없이 엄격하게 비평했었다. 김파선생님은 관맹병제(宽猛并济)형의 인물로서 명예와 권력은 남에게 모두 양보하지만 우리 민족문학 발전을 위해서 평생 혼신을 쏟으며 강한 리더십(领导力)으로 문단의 수많은 후배 양성에 힘을 몰부었다.


문학 예술 수준과 도덕성을 동시에 강조하며 행동으로 실천해온 분이 바로 김파 시인이였다. 때문에 만날 때마다 늘상 성인 공자님을 만나는 신비로움을 느꼈으며 무언의 유교사상 교육을 주위 사람들 모두 무게있게 받아들이군 했다.  


1997년부터 대련에서 김파 시인을 알게 되였는데 그분의  외삼촌 류동하는 조선침략 원흉 이등박문을 격사한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 류동하)  투사중  사람이였다. 그래서인지 김파 시인은 민족 정신이  누구보다 강하였다


김파선생님은 시문학을 통하여 민족 사랑, 나라 사랑, 인류 사회의 진리와 비진리, 선악의 허위와 진실, 인류는 어떤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가? 하는 철리적 제안을 풍부하게 예술성 높게 표현했다.


김파 시인의 많은 시집 중에서도 가장 공명을 일으킨 시집은 136페지로 된, 15만자로 엮어진 장편서사시 <천추의 충혼 안중근>이라고 생각된다. 1879 92, 안중근 탄생부터, 1907 로씨아 원동에서 의병운동, 190910269 할빈역에서 이등박문 격사, 113 려순 감옥 감금, 19103 26 94 안중근 투사의 순국할 때까지의 주요인물의 력사외에 일제 강점기 조선력사의 비운, 우리 민족의 항일투쟁열조를 낱낱히 구현했다.  


2013118 대련개발구에서 저의  음악콘서트가 개최되던 날 김파선생님은 다망중에도 참석해주셨고 주옥처럼 귀중한 축하문을 보내주셨다. 당시 저를 조선족 음악계에서 유일한 녀성 작곡가라는 과분한 평가를 하셨고 진심으로 뜨거운 축하를 해주셨다

         

2017 12 28일 김파 시인이 불행히 타계하셨다. 우리들은 비애를 힘으로 바꿔 민족의 문화와 문학 발전을 위해 모두 분투해야 한다. 고 김파 시인은 영원히 우리 맘속에 살아 계실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삼가 빈다!            

방화 2018 1 8일 대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