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녕신문》(遼寧朝鮮文報) 소개

      《료녕신문》은 료녕성의 유일 소수민족문자의 언론이다. 현재 료녕일보미디어그룹(遼寧日報传媒集团)에 귀속되여있으며 그룹 산하 에는 료녕일보(遼寧日報) 외, 료심석간(遼瀋晩報), 반도조간(半島晨報), 북방조간(北方晨報), 료녕법제보(遼寧法制報), 료녕신문(遼寧朝鮮文報), 가정과학(家庭科學), 기자요람(記者搖籃), 그리고 인터넷 북국넷(北國罔, http://www.lndaily.com.cn) 등 여러 매체가 있다.
      《료녕신문》은 1958년 8월 15일에 창간(8월 15일 시범호를 발 간, 10월 1일에 정식 출간함), 중공료녕성위 기관지인 《료녕일보》의 한 부문으로서 료녕성의 유일한 소수민족문자로 발행되였다. 초창기에는 타블로이드판으로 《료녕농민보 조선문농촌판 》(4개 면)을 수요일과 토요일에 주 2회 발행했다. 발행부수는 약 5천부로 주요하게 성내 조선족농민을 대상으로 배포되였고 당시 편집, 기자는 9명이였다.당시 백운기씨가 책임자(조장)로 있었고 편집내용은 주로 《료녕일보》를 번역하는데 그쳤다.
      1961년 1월 이 신문은 운영경비난으로 요절되였다.
      1965년 6월 우철희씨(당시 심양전서 간부) 등 조선족유지인사들의 호소로 1965년 12월 조선문신문은 마침내 복간되였다. 복간된 신문 제호는 《료녕 일보》 농촌판(조선문판)으로 하고 판형은 역시 타블로이드판에 4면, 주 2회 출판했다. 내용은 번역을 위주로 하면서 조선족사회의 관련 기사를 일부 취재해 실었다.
      1968년 8월 이 신문은 《문혁》으로 하여 재다시 페간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문혁》이 끝나고 당의 민족정책이 전면 관철 락착되면서 두번이나 페간되였던 이 신문은 1979년 1월 《료녕일보》 (조선문판)으로 재탄생(주 3회 출간)했다.
      1982년 1월 제호를 《료녕조선문보》로 고쳤다가 1986년 1월부터 다시 《료녕신문》으로 고쳤다. 판형은 역시 타블로이드판 4면이였다.
      1992년 1월부터 판형 을 타블로이드 배판(大报)으로 늘인 동시에 활자문선조판력사에 종지부를 찍고 컴퓨터식자조판을 실현함으로써 신문발전력사의 새 장을 열었다.
      1995년 10월부터 제호를 《조선문보》로 고쳐 사용했고, 1999년에 다시 《료녕조선문보》로 4개 면에 주 3회 출간, 발행하였으며 2000년에는 타블로 인드판의 24개 면으로 매주 토요일에 발행, 2001년에 16개 면으로 매주화요일과 금요일에 발행하였다.
      1999년 10월 21일, 당시 료녕성위 서기 문세 진이 친필제사한 신문제호 ‘금일료녕’(해외판)을 창간하여 도합 73기를 꾸렸다.
      2013년부터 제호를 다시 《료녕신문》으로 바꾸고 8개 면에 매 주 화요일과 금요일, 주 2회 발행하고 있다.
      《료녕신문》은 뉴스와 시사, 경제, 문화, 교육 등 주요 내용 외 만년생활, 관광, 연예스포츠, 동 포뉴스 등 다양한 전문란을 설치, 시정보도를 주요로 조선족독자들에게 민족문화, 민족교육, 민족경제의 관련 정보를 제때에 전달해주고 있다. 현재 약 20명의 편집 기자가 있으며 반수가 중 급이상 직함소유자이다. 《료녕신문》은 선후 ‘료녕성민족언어사업선진단위’, ‘동북3성민족언어사업선진단체’, ‘민족단결진보선진단위’ 등 영예를 따냈으며 아울러 동북3성에서 가장 환영을 받는 조선문신문중의 하나로 되였다.
      1996년 11월 23일, 국내 언론 처음으로 “우리는 ‘강도살인범’이 아니다”(페스카마호 선상살인사 건 범행자 전재천이 한국 구치소에서 써낸 진정서)와 관련 기사를 시리즈로 펴내여 국내외의 강렬한 반향을 일으켰다.
      《료녕신문》은 료녕성의 대외개방과 투자유치 및 대외홍보를 위해 큰 역할을 하였다. 한때 료녕성내 4천여개의 한국투자기업과 한국기업인이 3만명에 달하였는데 《료녕신문》은 한국기업인들이 중국과 료녕성을 리 해하는 중요한 창구로 되였다.  
      《료녕신문》은 개혁개방 이후 심양 경제사회발전과정에서 보여지는 심양특유의 현상을 지칭한 ‘심양현상’ 계렬보도를 기획했고, 조상들이 남겨준 땅을 어떻게 보존하며 땅을 기반으로 이뤄진 자본을 여하히 활용하여 삶의 공간을 보존하고 확장해내가고 있는가를 반영한 ‘땅은 우리의 명줄기’ 기 획보도를 기획하였다. 교육보도에서는 민족학교 운영모식과 민족문화전통교육에 관한 탐구성적인 뉴스발굴에 주력하였다. 또한 출국로무 및 한국방문취업, 조선족공무원현상황 등 조선족사회 의 중대한 뉴스를 심층보도하였다.
      2009년의 ‘료녕연해경제벨트’ 특별보도, 2010년의 ‘압록강 물결 따라 동포들 삶을 찾아’ 계렬보도, 중한 수교20주년 기념 계렬보도, 매년 심양한국주 특별보도를 통해 좋은 경험을 루적함과 아울러 뉴스접근방식의 변화와 보도내용의 거시성, 기자대오의 자질제고 등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는 2015년 중국항일쟁승리70주년를 계기로 실시한 ‘력사전환기 속의 성내 조선족지역사회 탐방’ 계렬보도는 료녕성내 조선족 인구가 5천명 되는심양, 대련, 무순 등 10개 도시를 순회 탐방하여 100여년의 력사대해 속에서 우리 민족 선조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각 지역 경제사회발전에서의 기여와 현단계 조선족인 구 대이동이라는 새로운 력사대변화 속에서 현주소와 문제점을 조명하였다. 
      《료녕신문》은 또한 성내 조선족중소학생들의 작문백화원인 ‘민 들레’작문콜클원지를 개척하여 올해째 27회로 료녕성조선족중소학생 "민들레"작문응모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으며 조선족문학애호자들의 문학창작활동원지로 ‘압록강’(부간)를 꾸려오 고 있다. 현재 ‘민들레’와 ‘압록강’은 료녕성조선족사회에서 인정하는 문화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료녕신문》은 인터넷시대를 맞 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소수민족신문에 대한 당과 국가의 민족정책을 적극적으로 쟁취하고 여러 민간단체와의 련대성 강화로 조선족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쟁취하고 부단히 자체의 조혈 기능을 강화하는 경영리념하에 전통미디어와 뉴미디어의 융합발전을 꾀하고 있는 동시에 동북3성 조선족언론사 간 협력으로 언론의 인도력, 영향력, 공신력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또한 "뉴스의 본토화와 본민족화, 판면의 브랜드화, 코너의 정품화"라는 운영리념을 부단히 실천하고 탐구하면서 종이신문을 기반으로 홈페지, 위챗, 웨이보, 잡지 등 매체들을 아우르는 다매체언론사의 기틀을 갖추었다.